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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28. 2023

니 거 랑  내 거랑


 들에 할 일이 없는 농한기가 시작되면  엄마는 대바늘로 뜨개질을 해서 아이들 옷을 떠 주었다.  어린 나는 그 옆에서 자투리 실을 얻어 코바늘로 벙어리장갑이나 목도리를 뜨곤 했었다.
 그 시절을 몸이 기억하는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습관처럼 코바늘을 잡는다. 올해는 조금 일찍 잡았다.
 몇 년 전, 24합 면실을 구입해 여러 개의 발 매트를 떴다. 실의 양을 파악하지 못해 제법 많은 실이 남았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창고에  숨어 있던 실을 다시 꺼냈다.






  그 실로 가방과 모자 세 개를 떴다. 모자는 동생들과 여행 갈 때 같이 쓰려고 고이 모셔 두었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는데  손이 또 심심해졌다. 완성된 모자가 맘에 들지 않아 떴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남아있는 실을 다 사용했지만 겨울은 이제 시작이고  손은 제 버릇 남 못주고심심해 해서  쿠팡에서 실을 구입했다. 24합 면실이  굵은 것 같아 18합 실을 구입했다.
그런데 다음날 도착한 실박스를 풀어보니 모자나 가방을 뜨기에는 실이 얇았다.
  이미 포장을 뜯어서 반품도 안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떠 보기로 했다. 역시나 모자에 힘이 없다. 다시 떴다 풀었다를 반복하던 나는 실을 두 겹으로 합쳤다. 합쳐서 36 합의 실을 8호 코바늘을 이용해 겹 짧은 뜨기로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던 남편은 "또 떠? 또 풀러"? 라며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코바늘을 놀리고 있는 내 손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눈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코바늘에 고정한 체 입만 열었다.
"뭘 그렇게 봐? "
"그게 모자가 된다는 게 신기해서!"
"머시 신기해? 걍 뜨면 되는데. 기다려봐. 당신 모자 뜨는 중이니까!"
"에이! 내 모자는 안 떠도 돼! 당신 모자나 떠!"
"내 거는 이미 떠 놨으요!"     

니꺼랑 내꺼랑

  밤이 깊도록 손을 움직여  모자를 완성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남편에게
'당신 거야! '라며 모자를 씌웠다. 필요 없다고 벗으려는 손을 제지하며 남편의 모습을  잽싸게 휴대폰 속에 넣었다.

 낮에는 감을 깎고 밤에는 짬짬이  떴다. 테이블 위에  니 거랑 내 거랑  나란히 놓고 바라보았다.  시나브로 입가로  미소가 퍼진다.  니캉 내캉 이 모자를 쓰고 겨울 여행을 떠나야지.  우리 어디로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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