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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30. 2023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그런 날이 있다

눈은 떴는데 몸은 자꾸만 이불속을 파고들고 싶은 날

개수대에 설거지할 그릇들이 가득 찼는데 손도 까닥하기 싫은 날

장식장 위에 먼지가 1센티쯤 쌓여서 눈에 거슬리는데 애써 외면하고 싶은 날

배는 고픈데 밥상 차리기 싫은 날

밥상을 차려 줘도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은 날

그렇다고 사 먹으러 나가는 것조차 귀찮은 날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남편에게 말했다.

‘나 내일은 늦게까지 잘 거니까 알아서 아참 먹고  출근해’라고 남편은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습관을 기억하는 몸은 평상시처럼 깨어났다. 출근하는 남편 아침 차려 주고 차 타고 나가는 것까지 보고 휴대폰을 챙겨서 그대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잠에 빠지고 싶었지만 잠들지 못했다.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브런치에 실린 글들을 읽으며 ‘좋아요’를 누르며 읽고 간다는 흔적을 남겼다. 몇 작품 읽지 않았는데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거실에 안경이 있지만 그것조차 가지러 가기 귀찮아 휴대폰을 닫았다.

이제 배가 고프다. 뭘 먹을까? 냉장고엔 김치뿐이다. 밥솥에는 딱 한 숟갈 정도의 밥이 남았다.

김치볶음밥? 누룽지를 눌릴까? 라면을 끓일까? 생각뿐이었다. 결국 나는 내 위장을 텅텅 비우기로 했다. 정말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 말고는 이불속에 있었다. 30분 정도 낮잠을 잤고 책 몇 장 읽었을 뿐인데 저녁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내 몸이 귀찮다고 일하고 온 남편까지 굶길 수는 없었다.

 저녁 찬거리를 걱정하던 나는 고등어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무조림을 해야지. 텃밭에 가서 무를 하나 뽑았다. 그리고 ‘뚜걱뚜걱’ 썰어서 냄비에 깔고 고등어를 그 위에 얹었다. 양념을 부어 은근하게 졸여서 남편 앞에 내놓았다. 수저로 국물 한 모금 떠서 맛을 본 남편이 국물이 시원하다며 다시 수저를 냄비로 가져갔다.

남편은 추운 데서 일하느라 고생했는데 나는 이불속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린 게 미안해서 너스레를 떨었다.

”내 솜씨가 좋은 게 아니고 무가 맛있는 거야. 많이 먹어!

남편이 맛있게 먹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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