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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30. 2023

갑년이가 잡년이 된 사연

   우리네 엄마들은 대부분 먹고살기 힘들어서 계집애라서라는 이유로 학교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다. 그러니 글을 배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어려서는 동생들 보살피고 집안 살림하다 공장으로 내몰려 남자 형제들 공부시키는데 희생당했다.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해서 층층시하 시부모님 모시고 자식 낳아 키우며 살아 내는 삶을 살았다.



     

  그 시절을 살던 갑년이도 이름 석자 읽고 쓸 줄 모르고 결혼했다. 남편은 부모님 잘 모시고 살림 잘하는 착한 그녀를 많이 좋아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달력에 적혀 있는 글을 묻고는 했다. 하지만 글을 전혀 읽을 줄 몰라 읽어 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이름 석자라도 쓸 줄 알아야 한다며 글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커다란 달력을 찢어서 뒷면에 ‘조갑년’이라고 써서 뒷면을 가득 채워 놓으라는 숙제를 내주고 일을 보러 나갔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입으로는 조갑년을 중얼거리고 손으로는  조갑년을 그리며 정성스럽게 달력을 채워 나갔다. 해묵은 달력까지 꺼내서 가득가득 메꿨다.

하루종일 연습한 결과 자신의 이름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대견해진 갑년이는 남편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이름이 가득 적힌 종이를 밥알을 이용해 안방 벽면 한쪽에 가득 붙였다.

 

  마당을 서성이던 해가 갸우뚱 기울며 지붕 위로 넘어가기 시작할 때쯤 남편이 돌아왔다. 사립문이 열리는 인기척에 갑년이는 맨발로 뛰쳐나가 남편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제 내 이름을 쓸 줄 안다며 방으로 들어와 자신의 이름을 써서 붙여 놓은 벽면을 보여 주었다. 벽에 붙어 있는 달력에 글씨를 보던 남편이 마구마구 화를 냈다.

"야 이 마누라야! 니 미쳤나? 와! 멀쩡한 사람을 잡년을 만들어 버리노? 네 이름이 잡년이가?"

 하루 종일 손가락에 쥐가 나고 혓바닥이 마비가 될 정도로 조갑년을 중얼거리며 공부했다. 남편이 왜 소리를 지르는지 이유를 몰라 눈물만 글썽거리며 벽에 붙어 있는 달력만 바라보고 있었다.

 벽면엔 조잡년이라는 글씨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아슬아슬하게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날 이후, 시간 날 때마다 글을 가르쳐 준 남편 덕분에 갑년이는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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