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폭넓게 분산 저장된 당신의 복사본이 있으므로
당신이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 한스 모라벡
마인드 업로딩, 즉 우리 뇌의 내용물을 컴퓨터로 옮겨 불멸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이제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뒤에서 다루겠지만([3부]의 내용을 참고하라), 이것이 정말로 가능한지는 현재 우리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불가능성이 확정 통보된 것도 아니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미해결 문제의 낙관적 전망으로 이어지기 쉽고, 자연스럽게 사업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선도적으로 뛰어든 기업이 넥톰(Nectome)이다. 이 회사의 목표 중 하나는 마인드 업로딩이 가능해지는 시점이 올 때까지—그들은 금세기 안에 가능하다고 본다—뇌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1] 초창기 넥톰의 홈페이지는 이렇게 회사를 알리고 있었다.
우리의 임무는 모든 기억들이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당신의 뇌를 잘 보존하는 것입니다—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의 내용에서부터 추운 겨울바람을 맞을 때의 느낌, 애플파이를 구울 때의 느낌, 친구나 가족과 식사할 때의 느낌까지.
넥톰은 냉동보존술과 함께 자신들의 고유한 방부처리 기술을 이용해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몸 전체는 아니지만 현대판 미라(mummy)다. 넥톰은 유명한 신생기업 투자회사인 Y 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지원을 받았다. 이 회사의 주요 투자자이자 최근에는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CEO로 우리에게도 이제 많이 알려진 샘 올트먼(Sam Altman)은 자금지원뿐 아니라 자신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두었다. 대기자 명단 접수 예약금은 2018년 현재 미화 10,000달러이다. 또다시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놀음 같아 보인다. 당연히 비판이 뒤따른다. 맥길대학의 신경과학자 마이클 헨드릭스(Michael Hendricks)는 보존기술로 대중을 현혹하는 기업에 대해 분노와 경멸에 찬 어조로 이것은 “절망적인 헛된 기대”이며, “두뇌은행으로 미래세대에 짐을 지우는 일”이라고 못박은 뒤 “우리는 이미 미래세대에 충분히 많은 문제들을 떠넘기고 있지 않은가?”라고 따져 묻는다.[2] 그럼에도 넥톰의 유혹은 강렬하다—어떤 면에서 인간존재는 기억의 총합이고, 죽음의 공포는 기억의 소멸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논의했던 커즈와일은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기게 초당 10^14 회 정도의 계산능력을 가진 컴퓨터를 인간두뇌의 등가물(equivalent)로 보고 있다—이에 동조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물론 근거도 없이 주장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3] 10^14 회는 1초에 100조 번 계산할 수 있는, 짐작조차 하기 힘든 컴퓨터의 능력이지만 이것을 인간의 계산능력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주장은 기본적으로 뉴런(neuron), 즉 두뇌의 신경세포를 하나의 비트(bit)로 보는 입장을 바탕에 가지고 있다. 신경세포 내 미세소관(microtuble)이라는 소기관을 마음(의식)의 자리로 보는 마취전문의 슈트어트 해머로프(Stuart Hameroff)는 비판한다—“컴퓨터로 본다면 하나의 미세소관도 초당 10^9 회 정도의 연산능력을 가지며, 신경세포를 계산의 기본단위로 여기는 관점은 신경세포에 대한 모욕이다.”[4] 생물학적 신경세포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초당 10^14 회 계산능력의 컴퓨터만 있으면 두뇌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고 무조건 주장할 수는 없다. 사실 아직 명확한 과학적 증거도 없다. 이런 컴퓨터가 진정으로 인간 의식의 작동방식을 반영할 수 있는지는 더 불분명하다. 미래의 컴퓨터가 완벽하게 뇌를 모델링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비판적 시각은 당연한 것이고 또 필요한 것이다. 단, 여기서는 인간두뇌를 정보처리를 위한 생화학적 기계로 간주하고 그에 상응하는 컴퓨터적 등가물은 그 정도의 계산능력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커즈와일을 먼저 다루었지만, 인간두뇌의 계산능력을 컴퓨터와 연관시키려는 노력과 관련해 일찍이 선구적이고도 급진적인 주장을 내놓은 이는 카네기멜론대학의 한스 모라벡이라는 로봇공학자이다. 커즈와일은 아버지의 죽음이 불러온 상실감, 그리고 그 상실감이 불멸에의 염원으로 이어졌다는 자신의 인간적 동기를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과 상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불멸 프로젝트에 대한 심리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에 반해, 모라벡은 거두절미하고 생물학적 죽음을 ‘기술의 문제’로 정의한다—기술적 문제는 항상 해결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그는 커즈와일이 보이는 최소한의 실존주의적 동기도 언급하지 않는다. 숨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철학적 문제로서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기계로 극복하려는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못했으리라 짐작은 한다. 어쨌든 모라벡에게 죽음은 마인드 업로딩으로 극복 가능한 ‘공학적 문제’ 일뿐이다. 철학적 논의가 전혀 없진 않지만,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극복하여 컴퓨터와 같은 비생물학적 재질(substrate)에 전이된 인간의식과 인공적인 몸(artificial body)의 미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공학자에게 죽음 그 자체를 논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인드 업로딩과 관련 쟁점들에 대한 다양한 주장과 전망은 모라벡이 쓴 두 권의 대표적 저서 <마음의 아이들: 로봇과 인간지능의 미래(Mind Children: The Future of Robot and Human Intelligence)>과 <로봇: 단순한 기계에서 초월적 마음에 이르기까지(Robot: Mere Machines to Transcendent Mind)>에서 전개된다.[5] 발간 연도가 각각 1988년, 1999년임을 감안하면 이 두 책은 낡은 책이다. 그러나 아직도 읽히는 것은 이 책들의 고전적 가치를 보여 준다—만약 당신이 이런 것에 관심이 있다면 주저 없이 권할 수 있다. 자신의 전공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생물학 및 물리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그의 주장을 전개해 나가는 명저들이다. 두 책의 제목 만으로도 미래의 지능기계는 ‘우리의 마음을 이어받는 자식’이 될 것이며, 그러한 기계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초월적 마음’을 가지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정도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모라벡은 기본적으로 로봇공학자라 ‘기계’ 또는 ‘로봇'이라는 표현을 지주 쓰지만, 요즘의 용어로는 지능기계는 ‘인공지능’, 초월적 마음을 지닌 기계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 정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6] 모라벡의 주장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인공지능 분야의 개척자 고(故)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 교수는 같은 맥락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지구의 상속자’가 될 것임을 예견한 바 있다.[7]
이제 문제는 우리의 두뇌, 즉 우리의 마음을 미래의 컴퓨터 (또는 로봇)에 이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모라벡은 로봇에 인간망막의 기능을 부여하려는 노력을 통해 얻은 성찰에 근거해 ‘뇌 스캔(brain scanning)’으로 우리의 마음을 이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한다.[8] 더 나아가 미래의 컴퓨터와 로봇은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뛰어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때가 되면 인간은 자기중심적 사고 안에서는 여전히 존엄한 존재이겠지만, 모든 면에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 또는 초월한 기계적/소프트웨어적 존재에 대해 더 이상 기득권을 주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거의 40년 전의 전망이지만, 이제 이것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유일한 대안은 우리의 마음을 그 기계적 존재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주시키는 것이다. 모라벡은 이를 ‘transmigration’이라고 표현했다. 번역하면 ‘이주’도 되고 ‘윤회’도 된다. 기계에서 기계로, 즉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우리의 마음이 끝도 없이 옮겨 다닌다면, 이것은 윤회인가, 영생인가?
좀 길지만 모라벡의 책 내용을 번역하여 옮긴다.[9] 섬뜩하기도 하지만 인간의식이 컴퓨터로 이식되는 가상의 시나리오다. 모라벡을 비롯해 많은 미래학자들이 가까운 미래라고 예측하거나 혹은 꿈꾸는 미래다.
당신은 이제 막 수술실로 옮겨졌다. 뇌전문 로봇 외과의가 수술에 참여한다. 당신 옆에는 인간 등가물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하지만 아직 실행할 프로그램은 없는 상태인 컴퓨터가 있다. 당신의 두뇌는 그대로 두고 두개골만 마취에 들어간다. 당신은 여전히 온전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로봇 외과의는 당신의 두개골을 절개하여 뇌 표면에 로봇 손을 가져간다. 이 특수한 손은 미세한 기계장치들을 담고 있으며, 당신 옆에 있는 컴퓨터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손 안의 장치들은 몇 밀리미터 깊이의 뇌 표면을 스캔한다.[10] 고해상도의 자기공명 계측값들에 근거해 3차원 화학지도를 구축하는 한편 일련의 전자기 안테나들은 매 순간 빠른 속도로 신경세포들 간의 점멸하는 펄스가 드러내는 신호를 수집한다. 이 계측값들은 인간 신경구조에 대한 통합 해석시스템에 추가되어 로봇 외과의가 스캔받은 최상위 층의 뇌조직을 모델링하여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성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프로그램은 당신 옆에 있는 컴퓨터에 설치되고 작동된다. 이제 로봇 손이 받은 계측값들은 본래의 뇌조직이 받는 입력값이 되어 프로그램에 제공된다. 당신과 로봇 외과의는 프로그램이 발생시키는 신호와 당신의 두뇌신호를 비교하여 두뇌 시뮬레이션의 정확도를 점검한다. 신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점멸하지만 어떤 불일치가 발견되면 컴퓨터 화면에 표시된다. 로봇 외과의는 완전한 동일성이 확보될 때까지 두뇌 시뮬레이션을 미세조정한다.
시뮬레이션의 정확도를 더 확실히 해두기 위한 방편으로 당신에게 누름단추가 제공된다. 당신은 시뮬레이션을 실시간으로 시운전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본래 뇌조직의 기능과 비교할 수 있다. 당신이 누름단추를 누르면 외과의 로봇 손의 전극들이 활성화된다. 전류 및 전자기 펄스의 정밀한 주입에 의해 전극 신호들은 인접 신경세포들의 정상적인 신호활동에 대해 우선권을 가지게 된다. 당신이 버튼을 누르고 있는 동안 당신 신경계의 일정 부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치된다. 당신은 버튼을 누르고 놓았다가 다시 또 누르지만 어떤 차이점도 느끼지 못한다. 당신이 결과에 만족하게 되면 시뮬레이션에 의한 신경 연결망이 영구적으로 확립된 것으로 본다. 이제 실제 뇌조직의 기능을 정지시킨다—뇌조직은 여전히 이전처럼 입력값을 받아 반응하겠지만 출력값은 무시된다. 로봇 손의 미세 장치들은 이 잉여조직들을 잘라내어 흡인장치로 보내 분리되도록 한다.
이제 로봇 손은 당신 뇌의 몇 밀리미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곧바로 계측값들과 신호들을 변화된 위치의 내용으로 보충한다. 이러한 과정은 다음 단계의 층에 대해 반복되어 곧바로 두 번째 시뮬레이션이 컴퓨터에 저장되고, 첫 번째 시뮬레이션 그리고 남아있는 뇌조직과 통신을 유지한다. 계속 뇌조직 층을 하나씩 파고들어 가면서 당신의 두뇌 전체가 시뮬레이션된다. 결국 당신의 두개골은 비워질 것이며 로봇 손은 뇌간의 깊숙한 곳까지 이르게 된다. 당신은 의식—그리고 의식의 흐름조차—을 잃지 않았지만 당신의 마음은 뇌에서 제거되어 기계로 이식되었다. 최종적인 단계에서 로봇 외과의는 당신의 두뇌로부터 손을 뗀다. 갑작스럽게 폐기된 당신의 몸은 경련을 일으키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잠시 동안 당신은 적멸을 경험한다. 그리고 다시 당신은 눈을 뜬다. 그러나 이전에 가졌던 당신의 몸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로봇 손에 연결된 전선으로부터 해제되고 당신이 선택한 스타일, 색상, 재질을 가진 새로운 몸에 연결된다. 당신의 변신은 완성되었다.
이 ‘변신(metamorphosis)’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되어 시뮬레이션, 즉 가상현실 안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만만치 않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래학자, 공학자, 몽상가들은 이 가능성에 열광하고 집착한다. 커즈와일 분파는 이제 ‘인간과 인공지능의 융합’이란 트렌디한 표현으로 모라벡의 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언제쯤 가능해질까? 미래학자 이언 피어슨(Ian Pearson)은 2050년이라고 했다.[11] 전제가 있다. 이것을 원한다면 당신은 부자여야 한다. 부자가 아니라면 2075 또는 2080년까지 기다려야 한다—지금 살 수 없다면 값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전자제품과 같다. 2000년에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라면 기대해도 좋겠다. 58년 개띠 ‘베이비부머’라면 언감생심이다.
모라벡은 자신의 두 번째 책에서 2040년에 컴퓨터는 인간지능에 도달하게 될 것이며, 2050년에는 우리를 압도적으로 추월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커즈와일과 비슷하다. 이로 인해 전례 없는 일자리 소멸이 따를 것이라고 보지만, 지능시스템에 의해 자동화된 경제 덕에 오히려 편안한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본다. 이것도 커즈와일과 비슷하다. 이런 낙관론은 호된 비판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이 책은 미래기술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출구를 다시 이용한다. 이 문제는 그렇다 치고, 전작에 이어 여기서도 핵심은 우리의 마음을 지능기계에 이식하고, 우리 마음의 자식인 그 지능기계는 영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좋은 점은 우리의 마음을 상속받은 지능기계는 성장하여 우리의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고, 희망컨대, 책 제목처럼 ‘초월적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지능기계는 그동안 구곡양장의 길을 걸어왔던 우리의 생물학적 진화를 종료시키고 기계적 혹은 컴퓨터적 진화로의 이행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이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모라벡의 영생기술은 단순하고 편리하다—구현 가능하기만 하다면. 뇌스캔을 통해 컴퓨터에 업로드된 인간의 마음은 이제 컴퓨터 데이터와 코드가 될 것이다. 컴퓨터 파일은 손상 없이 복제가 가능하다. 내 마음의 카피본 하나가 손상되어도 백업 파일이 있으니 복구할 수 있다. 실행 중인 하나와 100개의 백업이 있으면, 101개의 ‘나’가 존재하는 것인가? 그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 똑같은 ‘나’가 101개 존재하는 것인가? 100개는 백업이므로 실행 상태는 아닐 테고, 시간이 지나 새로운 경험을 축적한 ‘나’는 백업과 다른 의식세계를 가질 것인데, 시스템 장애로 실행 중인 ‘나’가 파괴되어 백업 파일 하나를 다시 실행시키면 어떻게 되는가? 파일 삭제된 이전의 ‘나’는 죽은 것이고, 이제 ‘나’는 백업 시점의 의식 상태에서 다시 새롭게 삶을 경험해 나가는 것인가? 이런 철학적 문제는 모라벡의 문제가 아니고,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에 옮길 수 있으며, 성숙한 기술이 도래하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것뿐이다—다시 한번, 그는 철학자가 아니고 기술적 선지자이다.
모라벡은 <사이버스페이스 안의 돼지들(Pigs in Cyberspace)>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인간마음을 기계로 다운로딩하기’라고 좀 올드한 표현을 쓰는데, 당연히 요즘은 ‘마인드 업로딩’이라고 쓴다.[12]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현재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는 결론을 낼 수 없다. 이랬든 저랬든 모라벡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컴퓨터로 업로드될 것이며 미래의 컴퓨터 안에서 순수의식만 가지고 있는, 그러나 이미 인간을 한참 뛰어넘은 초지능적 존재(superintelligent entity)—이것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다—와 나란히 살아갈 수도 있다. 이 초지능은 개별적 존재일 수도 있고, 어쩌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집단 초지능(collective superintelligence)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에게 오감(그리고 운동)은 매우 중요하다.[13]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도 오감과 분리해 다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라벡은 위에 소개했던 두 저서에서도 감각이나 운동을 중요하게 여긴다(모라벡은 기본적으로 로봇공학자이다). 예를 들어, 감각기능을 차단시킬 수 있는 염류용액(saline solution) 탱크에 12시간 정도 가두어두면 사람은 헛것을 보기 시작한다. 이것을 방지하려면 컴퓨터 안에 이런 감각기능들이 완벽하게 구현된 시뮬레이션 또는 가상현실 시스템과 업로드된 우리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몸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은 더 이상 가지게 되지 않겠지만, 몸이 없이 존재할 경우의 부작용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 속이라 하더라도 오감에 구속된 우리의 ‘컴퓨터 마음’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몸이 없는 초지능적 존재가 돌고래라면, 우리는 잠수복을 입고 굼뜬 동작으로 물속을 헤매는 존재일 것이다. 컴퓨터 안에 동거한다 할지라도 초지능과 우리의 발전속도는 현저히 차이가 날 것이다. 컴퓨터 안으로 마음을 옮긴 우리는 그 사이버 스페이스 또는 사이버 월드(또는 가상현실)에서 초지능의 가축밖에는 될 것이 없는가? 이상한 제목이라 생각했지만, ’ 사이버스페이스 안의 돼지들’은 사실 끔찍한 제목이었다.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났으므로 이곳에서 우리는 불멸의 존재는 되겠지만, 이게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 우리가 현미경으로 박테리아를 관찰하듯이, 초지능이 우리를 관찰하고, 가끔 인간의 과거를 다 복원하여 사이버스페이스 내에 사이버스페이스를 만든다면? 우주의 자원으로 무지막지한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한 초지능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에너지를 조금만 할애해도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모라벡의 생각은 더 나아간다. 아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바로 이 세계가 혹시 초지능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초지능이 작성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구동되는 시뮬레이션일까? 모라벡은 괄호를 쳐서 ‘거의 확실하게’라는 표현을 굳이 넣는다. 그러나, 통재라, 이것이 사실인지를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 Regalado, Antonio, “A startup is pitching a mind-uploading service that is “100 percent fatal,” MIT Technology Review, March 13, 2018.
[두뇌의 방부처리와 냉동보존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신생기업 넥톰(Nectome)에 대한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기사]
[2] Michael Hendricks, “The False Science of Cryonics,” MIT Technology Review, September 15, 2015.
[냉동보존술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관련 산업에 대한 비판을 담은 맥길대학 헨드릭스 교수의 MIT 테크놀로지 리뷰 기고문]
[3]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13. 불멸 프로젝트를 위한 고려사항들]의 ‘컴퓨터 발전의 속도가 가지는 의미'를 참고하라.
[4] Hameroff, Stuart, “Is Your Brain Really a Computer, or Is It a Quantum Orchestra?,” The Huffington Post, July 8, 2016. (https://www.huffpost.com/entry/is-your-brain-really-a-co_b_7756700)
[인간두뇌가 컴퓨터라는 관점에 대해 비판하는 슈트어트 해머로프의 허핑턴포스트 기고문. 인터넷 언론 허핑턴포스트는 2017년 허프포스트(Huffpost)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책에서 인용된 몇몇 기사의 URL은 변경된 허프포스트의 것으로 표시했다.]
[5] Hans Moravec, Mind Children: The Future of Robot and Human Intelligenc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8. (마음의 아이들: 로봇과 인공지능의 미래, 박우석 역, 김영사, 2011)
[로봇과 컴퓨터의 미래, 인간의식의 업로딩을 예측하는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의 명저. 책의 무게에 비한다면 늦은 번역이다. 인간의 미래를 논하는 데 있어 이 정도의 깊이를 가지는 책은 흔하지 않다고 본다. 이 책이 주제로 삼고 있는 내용과 관련해서는 필독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국내 번역본의 역자는 Superstring을 ‘초끈’이라는 정착된 번역어가 있음에도 ‘초현’이라고 옮기는 등 물리학과 컴퓨터과학 분야에 대한 다소 낮은 이해도를 보이고 있다. 문장도 매끄럽지 못해 가능한 독자라면 원서를 권한다.]
Hans Moravec, Robot: Mere Machines to Transcendent Mind,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9.
[‘마음의 아이들’의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는 한스 모라벡의 저서. 커즈와일처럼 로봇 또는 지능컴퓨터가 2040년 경에 인간지능의 수준에 도달할 것이고, 2050년 경에 인간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을 담고 있다. 로봇의 우리의 진화적 상속자가 되겠지만, 모라벡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어둡지 않다. 우리의 후손들이 미래의 컴퓨터에 의식을 업로드해 소위 ‘ex human(탈인간, 초인간)’이 될 것이라는 전작의 전망도 계속 이어진다.]
[6] 인공지능과 초지능에 대해서는 부록의 [우리는 미래에 필요 없는 존재일까?]와 [라스트 AI]의 논의를 참고하라.
[7] Marvin Minsky, “Will robots inherit the Earth?” Scientific American, October, 1994. (Also reprinted in The Scientific Conquest of Death: Essays on Infinite Lifespans, Immortality Institute, pp. 123-133, 2004.)
[인간의 몸과 두뇌의 변화를 통한 수명연장과 인간지능의 발전을 전망하는 인공지능 분야의 창시자 마빈 민스키의 에세이. 인간이 확장된 모습인 로봇이 지구의 상속자, 즉 모라벡처럼 ‘마음의 아이들’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8] 모라벡은 인공지능 분야 중 시각정보처리 연구를 많이 했다. 미국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를 기반으로 2003년 시작된 시그리드(Seegrid)라는 회사의 공동창업자가 된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영상정보처리를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다.
[9] Moravec, 1988, pp. 109-110.
[10] 가상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몇 밀리미터’는 신경세포 연결망의 조밀한 분포를 감안할 때 너무 성긴 느낌이 있다. 한 연구는 10 나노미터의 해상도로 뇌 스캔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S. Takemura, et al., “Synaptic circuits and their variations within different columns in the visual system of Drosophila,” The Journal of Neuroscience, Vol. 28, No.12, pp. 2959-2964, 2015). 현재 기술의 한계가 뇌 스캔의 불가능성에 대한 논증이 되지는 못한다. 지금 불가능하므로 앞으로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 태도가 아니다. 물론 뇌스캔을 통해 뇌의 기능이 완벽하게 컴퓨터에 재현될 수 있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꽤 먼 미래의 일일 수도 있지만, 종종 미래는 우리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다.
[11] David Smith, “2050 - and immortality is within our grasp,”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2005/may/22/theobserver.technology, 2005.
[마인드 업로딩이 2050에는 가능할 것이라는 이언 피어슨의 주장을 담은 The Observer의 기사]
[12] Hans Moravec, “Pigs in Cyberspace,” pp. 259-266, 1992. (Also reprinted in The Transhumanist Reder, eds. Max More, and Natasha Vita-More, 2013.)
[마인드 업로딩과 초지능에 대한 한스 모라벡의 에세이. 미래의 컴퓨터 안에 존재하게 될 우리의 의식과 초지능의 관계, 그리고 우리가 이미 가상현실 속에 존재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논의한다.]
[13] 로돌포 이나스라는 신경과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의식은 운동이 내면화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천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마르케스가 “눈이 부시도록 성숙하다”는 말로 이 명제의 가치를 평가했다(Llinás, Rodolfo R., I of the Vortex, MIT Press, 2002. (꿈꾸는 기계의 진화: 뇌과학으로 보는 철학명제, 김미선 역, 북센스, 2007). 인간의 마음을 몸과 분리시켜 독립적, 비물질적 실체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하다. ‘영혼’이란 개념도 그래서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