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 성에 대한 억압은 다른 성에 대한 억압을 가져온다 - 존 스튜어트 밀

by Sofia

어떤 책을 읽다가 존 스튜어트 밀이 쓴 글귀를 보았다. 그것은 '한 성에 대한 억압은 다른 성에 대한 억압을 가져온다.'이다. 이 말을 현재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서 보면, 여성에 대한 억압이 남성에 대한 억압을 불러온 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여성을 억압함으로써 남성들이 취하는 이득들이 분명히 있다. 여러 많은 사회들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더 높은 지위로 더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집에서는 가장이라는 이름 아래 권위를 갖는다. 성적으로도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들, 회사의 임원들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비율을 살펴보면 남성들이 분명 어떤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느 회사 조직의 전부가 남성인 것을 떠올리고, 반대로 어떤 회사 조직의 전부가 여성인 것을 떠올렸을 때, 대부분에게 어색한 그룹은 후자일 것이다. 남성이 디폴트값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얻는 남성들이 얻는 손해와 '재억압'도 만만치 않다. 남성들에겐 한 가정의 경제를 자신이 책임저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장이고 아무리 아내가 같이 돈을 벌더라도 1차적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 표현도 쉽게 할 수 없다. 남자답지 못하니까. 항상 씩씩해야 한다. 그렇게 배웠고 습득했고 세뇌됐기 때문이다, 즉, 억압이 억압을 낳는 것이다. 여성이 억압을 받고 끝이 아니라 그게 다른 성을 억압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하나의 성만을 위한 연구가 절대 아니다. 한국에서 아직 뿌리가 뽑히지 않은, 가부장적인 문화를 보자. 나는 큰집에 가면 problem maker였다. 제사를 지낼 때 남자들만 참여했지만, 나는 내가 나서서 참여하고 싶다고 해서 당당하게 조상님께 술을 올렸다. 나는 제일 어른이신 큰아버지의 밥상 앞에 당당히 앉아서 밥을 먹었다. "여기 앉아서 먹어야지~"하고 말이다. 아무도 나처럼 당돌한 손녀들이 없었다. 뭔가를 깨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불편한 기운도 있었지만 나는 모른척 했다. 하지만 많은 가정에서, 알게 모르게, 은근하게(은근해서 더 문제인 것 같다.) 가부장적 모습은 없어지지 않았다. 부계사회로 점철된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 해방의 과정이 조금 더딘 것 같다.


페미니즘을 선택하는 것은 남성들에게도 결코 불리하지 않다. 오히려 힘든 짐을 내려놓고 고된 일상을 그만 해도 되는 시간이 온 것이다. 페미니즘은 사실 '성의 해방'을 추구한다. 어떤 성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지구에 반반씩 나눠 살았고, 서로가 없으면 아무도 없으니, 서로의 말에 귀기울여 듣고 말하는 토론의 장이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 모순적이게도 페미니즘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이기 때문에, 그 어떤 성이기 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sex에서 gender적 감수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 그게 페미니즘의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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