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그 집 떡볶이 사줄게. 이번 주는 올 수 있니?
한국에 돌아온 후 내가 의지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은 외할머니다. 할머니는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 남편을 여의시고 시장 한복가게에서 장사를 하시며 홀로 세 남매를 키워내신 존경스러운 분이시다. 아직도 그때 그 자리, 안양중앙시장 뒷골목에 위치한 작은 한복가게에서 막내 삼촌과 함께 장사를 하신다. 할머니가 한복 장사를 하시니 국제 학교에서 매년 각자 본인 나라의 전통 옷을 입고 진행했던 ‘국제의 날’ 행사 때만큼은 내가 제일 좋은 한복을 입었다.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고, 특히 안양중앙시장의 한 노상 포장마차 집의 떡볶이를 좋아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한국에 올 때마다 꼭 그 집 떡볶이를 먹었고 심지어 내가 그 집 떡볶이를 너무 좋아해서 할머니는 중국 천진에 우리를 보러 오셨을 때도 그 집 떡볶이를 싸오셨다. 시장 인심이라고, 그 집 사장님은 이제 내가 떡볶이만 시켜도 순대를 산더미만큼 덤으로 주신다.
24시간 돌아가는 보도채널 방송사에서 일하다 보니, 대부분 주 6일, 어떤 주는 주 7일 근무를 선다. 그래서 나에겐 개인 시간이 많지 않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평근을 제외하고는 아침 6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조근, 오전 11시 반부터 밤 9시까지의 중당 근무, 저녁 5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의 또는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의 야근을 각각 한 달에 두세 번씩 서서 개인 시간이 나더라도 무언가를 하기에 애매할 때가 많다. 그래서 할머니를 그렇게 자주 찾아뵙지는 못한다. 할머니는 내가 너무 보고싶으실 때마다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고 그 집 떡볶이를 먹으러 오라고 하신다.
연세도 있으시지만 평생 장사를 하셔서 그런지 할머니는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야 하셨을 정도로 몸이 여기저기 안 좋으시다. 첫 번째 허리 수술을 받으셨을 때는 내가 홍콩에 있었고 두 번째 허리 수술을 받으셨을 때는 내가 한국에 돌아온 후여서 연차를 내고 꽃과 도넛을 들고 병문안을 갔다. 꽃을 받아든 할머니는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살짝 눈물을 머금으신 채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꽃을 받아본다고 말하셨다. 평생을 여자보다는 세 자녀의 엄마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만 사셨던 거다.
우리 가족이 외국으로 나간 지 너무 오래됐고 부모님은 아직도 외국에 계시니 할머니는 딸인 우리 엄마를 정말 많이 그리워하신다. 그래서일까? 나는 할머니한테 더 딸 같은 외손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