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 오이김치랑 달래무침 먹고 싶어.
참 철없다. 난 먹고 싶은 김치가 생기면 매번 할머니를 찾는다. 할머니는 오이지 말고 오이김치가, 달래장 말고 달래무침이 먹고 싶은 거 맞냐며 몇 번을 되물으셨다. 들뜬 목소리로 시장에 나가보니까 요즘 열무도 좋아 보인다며 하는 김에 열무김치까지 담가야겠다고 말하셨다. 갑자기 할머니가 김장 통을 들고 아픈 허리를 몇 번이나 폈다, 굽혔다 고생하실 모습이 눈에 스쳤다. 내가 또 괜한 이야기를 했나 싶었다. ‘할머니, 그냥 할머니 하기 쉬운 거만 대충 해,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아니면 나 가면 같이 하던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금방 해, 너 하나 먹일 거 못해줄까 봐?’라고 말하셨다.
나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섞박지, 열무김치, 갓김치, 오이김치, 파김치, 부추김치 이런 김치면 한 종류에다가 만도 밥 한 공기는 뚝딱 해치운다. 며칠 내내 그렇게만도 먹는다. 그걸 아시는 할머니는 해주신 게 떨어지기도 전에 다른 걸 해주신다.
난 그걸 또 안양에서부터 영등포까지 지하철을 타고 김치 냄새를 풍기면서 들고 온다. 겹겹이 잘 싸도 김치 냄새를 아예 안 나게 할 수는 없더라. 민폐가 따로 없다는 거 안다. 누가 뭐라고 하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내렸다가 다시 타야지 하는 생각으로 눈치를 보면서 들고 온다. 할머니가 아픈 허리를 갈아 넣으신 내 두, 세 달 치 식량이니까.
죽기 전까지는 할머니가 너 김치 해줄 거야.
‘죽기 전까지’라는 말을 점점 많이 하셔서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고 짜증도, 화도 내봤다. 눈물이 난 적도 있다. 근데 그냥 툭툭 나오시나 보다. 나도 이제 툭툭 받아친다.
그럼 더 오래오래 사셔야겠네. 나 김치 해줄 사람 할머니밖에 없잖아.
김치 통을 건네신 할머니가 받아든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셨다. 이게 바로 내가 먹고 싶은 김치가 생기면 매번 할머니를 찾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