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까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할머니한테 해달라고 졸랐는데 이제는 먹고 싶은 게 있어도 해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놀러 갈 때, 음식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물어보셔도 먹고 싶은 거 딱히 없으니 집에 있는 거 먹자고 한다. 할머니가 힘든 게 진짜 싫어졌다.
이번 설에, 난 결국 엄마와의 갈등을 뒤로하고 할머니를 찾아뵀다. 사실 할머니가 해주시는 오징어초무침이 너무 먹고 싶었으나 이번에도 먹고 싶은 거 딱히 없으니 집에 있는 거 먹자고 했다. 하지만 너무 먹고 싶었던 나머지 가는 내내 고민했다. 오징어랑 재료를 사갈 테니 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볼지 말지를 말이다. 결국 못 여쭤봤지만.
집에 갔더니 불도 안 켜고 주방 구석에 앉아 만두를 빚는 할머니가 나를 반겼다. 속상했지만 잔소리는 넣어두고 그냥 조용히 불을 켜드렸다.
만둣국이나 먹자.
직접 빚어 만든 만두를 넣은 만둣국을 별거 아닌 거처럼 말하는 할머니다. 더 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시겠지만 나는 더 원하지 않는다.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식탁에 음식이 하나, 둘 차려졌다. 만둣국이나 먹자던 할머니는 뭘 또 자꾸 꺼내오셨다. 내가 좋아하는 나물들이었다. 고사리랑 시금치. 그러다 식탁에 등장한 건 오징어초무침이었다. 내가 그렇게 먹고 싶었던 오이와 도라지가 들어간 새콤달콤한 오징어초무침. 오징어가 많지 않아도 오이와 도라지에 밥 한 그릇 뚝딱이다. '나 이거 먹고 싶은 거 어떻게 알았어? 오면서 내내 해달라고 할지 말지 고민했는데.'라고 물었더니 '뭘 고민했어. 말하면 되지. 그리고 오랜만에 오는데 너 좋아하는 거 하나는 해야지. 너 이거 좋아하잖아'라고 답하셨다.
너 이거 좋아하잖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 진짜 몇 명이나 될까. 물론 할머니라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아시지는 않겠지만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해주는 할머니가 좋다.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할머니는 너는 뭘 해줘도 잘 먹어서 기분이 좋다며, 리액션도 왜 그렇게 잘 하냐고, 그래도 입에는 넣고 맛있다고 하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