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 수도, 조금 못 살 수도, 그냥저냥 살 수도

by 초이

일주일에 한 번 보던 선생님을 다시 한 달에 한 번 보게 되었다.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보듬고 감정을 살피는 단계에서 앞으로 어떻게 잘 살 것인지를 의논하는 단계로 한 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하셨을 때 나도 앞으로 나눌 이야기가 기대가 됐다. 그런데 몇 번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앞으로 나눌 이야기가 기대가 되지 않았다. 잘 살 수도, 조금 못 살 수도, 그냥저냥 살 수도 있는데 마치 무조건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질 것 같았다. 내 삶을 잘 살 방법은 어느 정도 내가 이미 알고 있고 그런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면 그런 이야기는 이제 가족과 친구와 충분히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담 치료를 줄여나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상담 치료뿐만 아니라 약물 치료도 줄여나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맞고 틀리고도 없고 할 수 있어 보인다, 할수 없어 보인다도 없다고 하셨다. 그저 내가 왜 치료를 줄여나가고 싶은지가 궁금하다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께 이제 내가 주체적으로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전에도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었기에 선생님은 마치 취조를 하듯 같은 질문을 다른 언어로 여러 번 물어보셨지만 나는 선생님께 내가 내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내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줄여나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거부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존중해 주시기로 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정신과에 도움을 받는다는 게 부끄럽거나 의미 없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면 할 정도로 나는 치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치료를 통해 나는 많이 좋아졌다. 그저 나는 이제 치료에 너무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발걸음을 떼어보고 싶은 것뿐이다.


안 좋아지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안 좋아지면 다시 치료를 받으면 된다. 해 봐야 아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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