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과 기립성 저혈압
아프기 전에 응급실을 갔던 경험은 20대 초반에 계단에서 굴렀을 때였다. 노원이었던 거 같은데 너무나도 긴 계단에서 떼구루루 구르다 이렇게는 죽겠다 싶어서 무릎의 온 힘을 다해 찍어(?) 내렸던 적이 있다. 그때 다친 무릎은 날씨가 추우면 종종 시린 것 같다. 물론 헛소리다.
응급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족 모두 건강한 편이었고, 큰 사고를 당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연이어 두 번이나 응급실을 갔었다. 아니다 세 번이었다. 이 글을 쓰다가 방금 떠올랐는데 웃음이 난다 정말.
4차 항암 치료가 끝나고 백혈구 주사를 맞으러 가야 하는 날이었다. 그 전날 유독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방 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힘겨웠다. 차시가 늘어날수록 체력이 바닥난다는 말을 체감하고 있었다. 택시를 부르고 내려가는 길 내내 속이 울렁거렸고, 택시가 도착했지만 토하느라 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렇다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엄마의 부축을 받아서 집까지 가는 동안의 기억이 씹혀 있다. 그 5분도 안 되는 시간이 너무나도 긴- 시간으로 기억되었다. 겪어 봐야 아는 거지만, 이런 상황일 때는 억지로 사람을 들거나 부축하려고 할 게 아니라 그냥 안전하게 눕히거나 앉히는 게 맞는 것 같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나니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엄마가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휘두르는(?) 바람에 팔의 고통이 어마어마했다.
119에 전화를 했고 10분도 안되어 도착하셨다. 의자로도 침대로도 변하는 들 것에 실려 나갔고, 암환자인 상황으로 멀리 있는 세브란스까지도 이동해 주셨다. (보통은 가까운 응급실로 갑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무조건 119에 부탁할 게 아니라 119에 전화해서 상황을 먼저 설명하고 선택하는 걸 권하고 싶다. 예를 들어 아래 2) 고열로 인한 경우에는 세브란스로 갈 수 없었고, 지금 같은 경우에는 세브란스로 움직여 주셨다. 119에서 내가 원하는 병원에 가 줄 수 없는 상황인데, 거동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면 자가용을 타고 가는 게 낫다. 괜히 헛걸음과 시간, 돈 낭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채혈 검사 결과를 보니 수혈을 받아야 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 이 때는 이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아서 갈 거라면 차라리 이렇게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담당 교수가 있더라도 내 상태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한 번 제대로 쓰러져 보니, 그 후로는 교수가 잘 챙겨 주어서 치료 끝날 때까지 좋았다고-해야 하나.
*드라큘라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수혈 최고. 남의 피 사랑합니다. 헌혈 몇 번 못했지만 (안 한 거 아니고 못한 거 확실함) 딱 그만큼은 수혈받은듯하다.
항암 치료를 하는 중에는 말 그대로 신생아 같은 몸 상태이기 때문에 여러 감염원을 조심해야 한다. 물론 알고 그러진 않겠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균에 노출되었을 확률이 참 높아진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이전에 고열을 앓아본 적이 없어서 내가 열이 나는 줄도 몰랐다. 귀에서 심장소리가 쿵쿵 울리고, 뭔가 띵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열을 재보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여러 번 말씀하셨던 '열'이었다. 열이 나면 바로 응급실 오셔야 해요.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소란 피우고 싶지도 않았고, 응급실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지난 1)의 경험으로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이스팩을 손수건으로 감싸 겨드랑이에 넣고 있었다. 그런데 열이 더 오르기 시작했고, 아 이건 가야겠구나 싶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게 나는 내가 직접 119에 전화해서 내 상황을 침착하게 설명했다. 엄마가 이런 상황에 침착하지 못한 사실이 좀 신기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시간이 너무 늦어서 혹시 사이렌을 끄고 와주실 수 있냐고 물었던 게 더 웃기다. (물론 불가능하다고 한다.)
구급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주셨는데, 처음 간 곳이었고 정말 더럽고 불친절했다. '더럽게 불친절했다'로 읽혀도 어쩔 수 없다. 아직까지 병실 곳곳에 거미줄과 불친절한 간호사와 의사의 말투, 환풍기 먼지 더미의 윙윙윙 회전이 눈에 선하다. 결국 참을 수 없어서 오빠의 차를 타고 다시 세브란스로 이동했다. 해열제를 맞고는 이내 괜찮아졌고, 또 교훈을 얻었다. 기승전 세브란스 만세. (세브란스와 어떤 관계도 없다.)
투병 기간에는 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그날도 택시를 불러서 합정 어딘가로 향했다. 다음 항암을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건강한 시기라 용기를 내어 외출을 감행했다. 가발을 쓰고 건강한 사람인척 뒷자리에 앉아 폰을 만지고 있었는데, 뒤에서 쿵. 하고 박았다. 사고였다.
'온 우주가 내가 죽는 걸 바라는구나!'
정말 딱 저렇게 생각했다. 이쯤 되면 내가 눈치 없이 살아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뒤차는 트럭이었고, 어떤 의미로는 이 정도인 게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했다.
'저 환자예요. 다치면 안 되는데...'
일단 다른 택시로 옮겨 타서 응급실로 향했다. 가까운 곳은 역시나 세브란스였고, 운명을 느낄 정도였다. 큰 이상은 없었지만 몸이 놀라서인지 몸살과 열에 시달렸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참 서러웠었다. 내가 뭔가 엄청난 걸 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만화카페에 가서 만화 보고, 커피 한 잔 하려는 게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나 싶었다.
응급실에는 정말 다양한 환자들이 있다. 항암을 하는 중이라면 응급실에 갈 때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어떤 균이 옮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에게 물린 사람, 술 먹고 쓰러진 사람, 말라리아, 교통사고...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열이 나면 가야 하고, 쓰러져도 가야 한다.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이 참 재밌는 해프닝이다. 그 해프닝에 열연해 주신 119 구급대원분들과 응급실 의료진분들께 참 감사하다. 거듭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이 참 많다.
암환자에게 응급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면, 위에 경험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