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유독 나이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다른 얘기를 하다가도 "그런데 나이가..?"로 귀결된다.
서점에 가도 책 제목이 나이타령이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마흔에 읽는 니체' '마흔에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20대 여자' 등 등. 마치 모두의 인생이 10년 주기로 무토막 자르듯이 나뉘는 것처럼. 실제로는 29살과 30살, 39살과 40살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그저 사회에서는 앞에 2자를 3자를 아니면 4자를 달았는지가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데 최대 관건이다.
노래 제목에도 나이는 피해 갈 수 없다. 아이유가 몇 년을 주기로 '나이'시리즈의 노래를 발표하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명곡의 반열에 올랐다.
뉴스에서도 기사는 피의자와 피해자의 연령대를 꼭 짚고 넘어간다. '30대 여교사', '40대 남성', '20대 남성' 이렇게 시작하는 기사들이 매일 쏟아진다. 범죄자든 피해자든 연령대의 정보가 최우선시되며 그들은 '나이대'라는 프레임 안에서 진짜 정체성은 희미해진다. 실명과 얼굴은 공개되지 않아도 나이는 꼭 공개된다.
나이. 나이. 나이. 어딜 가도 내가 절대 나이를 잊고 살지 않게끔 온 사회가 총력을 기울이고 사람들은 나이로 사람을 판단한다.
미국에 있었을 때는 내 나이를 의식할 일이 많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 빼고는 미국 회사에서 미국 사람들과 일할 때는 내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나도 남의 나이를 묻지 않았다. 미국에서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어보지 말기를.. 진짜 실례되는 질문이다. 그리고 실례인 것을 알면서 묻는 것은 예의 없는 행위다. 엘에이에서 나와 5년 동안 같이 일하고 내 카운슬러었던 파트너도 홍콩 가기 얼마 전에 매우 조심스럽게 내 나이를 물어봤다. 그것도 나이에 관련된 얘기가 오가던 중이어서 나이를 물어본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나이를 크게 개의치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들도 대학교나 대학원을 가고, 의학대학원에 도전하는 것을 실제로 몇 번 봤었다. 한국도 의대를 가기 어렵지만 미국도 정말 힘들다. 들어가는 것도 힘들지만 공부하는 기간도 학부를 제외하고도 8년 이상 걸린다. 그런데 60이 거의 다 되신 분이 의학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학부에서 공부하신다고 했다. 그분의 열정은 잊을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사람들끼리 나이를 물어보는 일이 별로 없다. 나이가 크게 의미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경력이 있는지, 일은 잘하는지, 성격이 어떤지 등이 중요할 뿐이지, 그 사람의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을 먼저 볼뿐 나이로 그 사람을 먼저 판단하지 않는다.
미국에 오래 있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오랜만에 마주한 나이 강박에 훅 거부감이 들었다. 처음 만난 혹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뜸 내 나이를 물어보고, 나의 사생활을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것에 처음엔 너무 당황했다. "It is none of your business." (당신이 상관할바 아니다)라고 대답해주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한국에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냐는 내 나이에 묻히는 것 같다. 때론 내 나이를 부끄러워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다. 웃긴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에, 떳떳하게 살지 않은 것에 부끄러워해야지, 왜 단지 나이 때문에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개인의 인생은 다 다른데 모두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서 나이로 사람을 속단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