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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 Bo May 13. 2023

사회에서 여자가 성공한다는 의미(1)

내가 만난 워킹맘들

몇 년 전 운동할 때 팟캐스트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었다. 미국 대기업들의 모든 여자 CEO 수를 합해도 'John'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CEO들의 수보다 적다. 충격적이었다. 'John'이라는 이름이 미국에서 '철수'보다도 흔한 이름인 건 알겠다. 높은 직급에 (c-suite 레벨에) 여자들이 적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모든 여자 대표들을 합쳐도 '존'이라는 이름을 갖은 남자 대표들의 수에도 대적할 수 없다니!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여자, 남자 모두 같은 교육을 받고 자라고 우리는 여자와 남자는 평등하다고 배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있는 걸까?..


내가 만난 워킹맘들 

회계법인은 소위 워라밸이 좋지 않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일이 좀 많다. 워킹맘들에게는 당연히 좋지 않은 환경이다. 여태껏 일하면서 다양한 워킹맘들을 만났다. 


미국에서 같이 일했던 여자 파트너는 (파트너는 회계법인에서 지분을 갖고 있는 가장 높은 직급이다) 아이가 셋이었다. 아이가 셋 이상인 여자 파트너는 이 업계에서는 완전 희귀종이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정도로 운이 좋은 편이다. 남편과 시부모님들이 총 출동해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기 나름이겠지만, 미국도 애들 키우는데 나름 손이 많이 간다. 한 명 한 명 학교, 학원 다 차로 태워다 주고 태워오고. 아이 셋이 다 다른 학교를 다닌다면 일은 배가 된다. 아무리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도 아이들 양육은 어느 정도 참여하긴 해야 한다. 그래서 그 파트너는 잠을 희생했다. 쪽잠을 자면서 새벽 3시, 5시 이럴 때도 이메일이 왔다. 도대체 잠은 언제 자냐고 물었었다. 그냥 시간 날 때, 피곤할 때 잠깐씩 잔다고 했다.   


그럼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같이 일했던 동료 중에 일을 진짜 못하는 여자분이 있었다. 우리 업계에서는 이메일을 신속히 체크해서 답신을 주고 기한에 맞춰서 일을 처리해 줘야 되는 건 서로 간에 기본 예의, 보이지 않는 약속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분은 기본도 못하셨다. 일 퀄리티도 낮았다. 팀 안에서 불만이 폭발했다. 그분은 버티다가 결국 일반 기업으로 이직하셨다 (일반 기업의 회계팀은 보통 워라밸이 훨씬 낫다). 난 그분이 원래 일을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 회사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한때는 에이스였다고 한다. 엄청 놀랐다. 어떻게 된 거냐고 동료한테 물어봤더니,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데 남편이 잘 도와주지 않아서 일을 전처럼 할 수 없다고 한다. 아..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도 어쩌나.. 팀한테 회사한테 엄청 민폐였고 우리도 그분 때문에 힘들었다.. 


여자분이 파트너로 엄청 빨리 승진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결혼을 일찍 하셨음에도 일부러 파트너 될 때까지 아이를 갖지 않았다고 들었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이 다른 남자 동료들과 경쟁하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될 테니. 


영국 워킹맘을 만났다. 아이가 셋이라고 했다. 일은 파트타임으로 했다. 그분은 일에 엄청난 열정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아니면 그냥 피곤한 것일지도..). 우리 둘 다 한국에 출장 와서 좋은 곳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의례적으로 하는 질문을 했다. "취미가 뭐예요?" 그 질문에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음.. 내가 뭐 실수했나?.. 순간 당황했다. 내가 실언을 했었다. 일을 하고 아이가 셋이면 취미를 가질 시간이 없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본인은 일하고 남편 챙기고 아이들 돌보느라고 시간이 거의 없다고 했다. 취미를 가져 본 지 좀 됐다고.. 겸연쩍고 공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날 저녁식사 중에는 마치 하와이에 휴가 온 것 같은 얼굴로 들떠 있었다. 그냥 회사 동료와 저녁식사였는데. 뭔가 짠한 생각이 들었다. 얘기하다 보니 원래 영국에 있을 때는 회사에서 꽤 높은 직급에 있었지만 남편이 일본 주재원으로 오면서 영국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한국에서 만난 워킹맘들 중에는 회사 동료들도 있지만 내 친구들도 있다. 그들은 회사에서 나름 일을 치열하게 하지만 회사 일도 만족할 만큼 못하고(아이가 있기 전에 비해), 마음 한편에 아이들과 충분히 시간을 같이 보내주지 못하는, 더 잘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일을 하면서 내 한 몸 돌보기도 힘든데 이런 워킹맘들을 보면서 존경의 마음과 연민을 동시에 느꼈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사회에서 성공한다는 건 본인에게도 많은 희생이 따르지만 제도적인 뒷받침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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