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년 전 이야기다.
“에휴… 괜히 온 것 같어…”
잔뜩 풀 죽어 나가는 아줌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내 차례다. 작은 창 넘어 앉은 노인이 이리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이름, 한자명, 생년월일, 태어난 시각을 종이에 적어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종이와 텔레비전만 한 모니터를 번갈아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종이에 무언가 열심히 적었다.
“자네 지금 목이 말라서 우물을 파는데 물이 한 방울도 안 나온다고 사주에 적혀있네! 껄껄껄”
“정말요?! 으하하하…”
정말 그랬다. 우물을 파는데 물이 나오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물을 파기 위해 작년 여름 휴학했다. 그 후 영화제 자원 활동과 각종 취업 특강을 듣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마음은 바빴지만 되는 것은 딱히 없는 그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앞으로 3일간 진행될 콘텐츠 릴레이 특강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특강은 스타트업과 매니지먼트 분야로 시작해 플랫폼, 웹과 앱 콘텐츠, 게임 그리고 방송 순으로 2개씩 나누어 3일간 진행되었다. 첫날은 매니지먼트의 인기가 좋았다. 현직자와 대학생. 많은 사람이 특강을 듣기 위해 모였다. 멘토는 To Do List를 보여주며 취업 성공전략을 강의했다.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매니지먼트 회사 취직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요?”
“어학 점수가 중요한가요?”
“자기소개서에 직무와 관련된 내용을 잘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매니지먼트 구직 정보는 어디서 얻나요?”
멘토는 충실히 답했다. 마지막 질문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현업자로, 질문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것은 아니라며 말문을 열었다.
“저는 연예인 매니저부터 시작해 10년 이상 일한 현직자입니다. 강의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매니지먼트 분야는 매출이 있어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멘토께서 말한 것과는 다른, 어려운 현실이 존재합니다. 모두 잘 나가는 매니지먼트 회사에 취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아마 대다수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영세한 회사에 입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멘토께서 말씀하신 것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3일간 진행된 특강은 대게 이런 식으로 끝났다. 노력하면 취직할 수 있을 거란 희망과 얄팍하게 부푼 의욕을 캄캄한 현실이 터트렸다. 마지막 날 진행된 방송분야 강연은 인기 프로그램을 제작한 PD였다.
“우리 방송국에 입사 희망하는 분들의 자기소개서, 이력서 꼼꼼하게 봅니다. 다들 어학점수도 높고 소위 스펙이라고 하는 것들. 너무 좋아요. 그런데 어학 점수나 그런 것들. 업무 보는데 사실 별 필요도 없어요.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보면 대부분 어디서 본 것들, 훈련된 것들을 쓴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에요.”
자신만의 색을 가져라. 어디서 보고 들은 것은 얘기하지 마라. 자기 생각과 시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라. 진정성은 그렇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일까. 채용 담당자가 생각하는 진정성은 무엇일까. 취준생의 숫자 만큼 채용담당자가 생각하는 진정성도 다채로울까. 마음과 달리 진정성은 머릿속에 계속 걸렸다.
진동이 울렸다. 휴대전화를 꺼내니 액정에 문자 내용이 나타났다.
“국가근로 희망 근로 신청기간 2/24일까지(장학 공지 참조)”
우물을 팠던 또다른 터는 장학재단이다. 학업과 생업을 병행하기 위해 국가근로를 같은 곳에 두 번 지원했다. 첫 번째 지원 때는 떨어졌다. 두 번째 지원에서는 무엇이라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서류 합격 후 면접이 잡혔다. 첫 면접 때의 기억과 자기소개서를 토대로 예상 질문을 추려 면접에 들어갔다.
“자기소개 해주세요.”
“sns에 올릴 간단한 홍보 콘텐츠 제작할 수 있나요?”
“혹시 인턴계나 취업계 내시고 일할 수 있으세요?”
“끝으로 궁금한 것 있나요?”
준비한 대답을 했다. 인턴계나 취업계를 낼 수 있냐는 물음에서 얄팍한 희망이 부풀었다. 면접을 마쳤을 땐 얄팍한 합격 신호를 만끽했다.
진동이 울렸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지난번에도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더 적합한 사람이 있어서 함께 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캄캄한 현실이 얄팍한 희망을 터트렸다. 터진 희망을 붙들고 집에 가는 길은 추웠다. 적임자와 부적합자를 오가다 터진 희망 사이에 찬 공기가 파고들었다.
되는 게 없어서 찾아 본 사주. 물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른 채 우물을 파는 나. 이게 내 사주팔자다. 이것이 내 모습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하루 하루다.
거울을 들여다 본다. 머리를 손질한다. 옷을 가다듬는다. 말끔하다. 이불을 갠다. 가방을 싸매고 도서관에 가서 앉는다. 자기소개서를 들여다 본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줄 한 줄. 한 문단 한 문단. 딱 자기소개서 글자 수 만큼의 내가 있다. 현실의 나와 자기소개서 속 나. 누가 더 나은 사람인가? 물 한 모금 내 손으로 떠먹지 못해도 현실의 내가 더 좋은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