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자소서 쓰다 인생 다간다

by 이지성

쿠키를 굽는다. 별점 10점. 하트. 관심 웹툰 설정 필수.

댓글 반응 살핀다.


→아.! 진짜 존나 재밌다.

→여기서 끊으면 다음주까지 또 어떻게 버티냐.

→그는 만신이야

→낭만 그자체


메모장 킨다. 간단한 리뷰 남긴다. 시즌1에 이어 시즌 2로 돌아온 <캐슬: 만인지상>. 액션, 캐릭터, 연출, 작화, 인물관계, 패션. 뭐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돌아 왔다. 제작 팀원 중 아트 디렉터 담당자가 눈에 띈다. 작품의 품위와 낭만이 넘친다. 어떤 사건과 인물들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망측한 것. 뭘 안다고 리뷰를 쓰는지. 아무튼 나는 자소서를 쓴다. 전세계를 대표 하는 웹툰 플랫폼에서 일하고 싶다. 회사와 나의 역대 전적은 3전 0승 3패. 기구한 93년생. 첫 번째 지원은 대학교 3학년, 두 번째 지원은 졸업무렵, 3번 째 지원은 20대 후반. 이쯤 하면 눈을 낮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규모에 속한 회사 두 곳을 다녔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좀 낫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시 또 기약없는 불확실의 세계에 놓였다. 시간은 자꾸가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된 것은 딱히 없는. 마음은 바쁘지만 결과는 늘 실패로 돌아가는 그런 시간이다. 회사를 다니면 다니는 대로 힘들고 아니면 아닌대로 힘이든다. 한 발짝 떨어지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는. 이렇게 오늘도 인생공부(?)가 된다.


지원동기 항목은 언제나 어렵다. 왜 지원했냐고 묻는 질문에 회사에 관한 로열티, 회사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그간 회사가 거쳐온 내력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두루 염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더 이상 다른 이야기는 없다고 한다. 나올 이야기는 이미 다 나왔다는 뜻이고 취준생들의 이야기도 더 이상 특별한게 없다. 반면 개성을 드러내야 하는 시대. 나는 어떤 사람이고 강점이 무엇인지 한 정된 분량에 일목요연하게 담아내야 한다. 막막함이 앞선다.


저녁 다섯시. 아침부터 도서관에 있던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많다. 회계사, 공무원, 대학입시, 공인중계사, 전기기사 등. 각자 밥벌이를 위해 하나씩 붙잡고 씨름중이다. 그들을 배경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도서관을 나선다. 집으로 가는 길. 퇴근 하는 사람들과 섞여 걷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표정과 그들의 표정은 다르지 않다. 약간의 안도감(?)이 든다.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유튜브를 시청한다. <면접왕 이형>, <퇴사한 이형>, <인싸담당자>. 대기업 인사담당자에서 취업 유튜버가 된 분들이다. 자소서 작성 원리에서 면접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콘텐츠는 끝이없고 조회수는 차곡차곡 쌓인다.


자정이 되서 이불 위에 드러눕는다. 아..아..!. 내일도 이짓을 해야 하는 구나. 같은 단어, 같은 문장, 같은 경험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만지다 끝나겠지. 정신건강에 몹시 해롭다. 내가 현생이든 전생이든 무언가 잘 못한 게 있는지 돌아본다. 깜깜할 뿐이다. 이력서를 천천히 되짚는다. 행간과 행간사이에 인생이 요약되어 있다. 이것 말고 내가 한 건 뭐가 없을까. 내 인생으로 나는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 것인지. 영화가 아닌 웹툰을 택할 수 밖에 없었고 왜 웹툰을 떠날 수 없는 지. 하고 싶은 것이 이것 밖에 없는지. 잠시도 다른 길로 한 눈 팔아 본 적도 없는데. 다른 마음 먹어 본적도 없는데. 왜 회사는 나를 밀어내려 하는 것인지. 난 왜 귀여운 신입이 될 수 없는지. 좋아 하는 배우 빌 머레이의 로맨스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인생이 어느 시기에 갇혀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 한다. 자소서 쓰다 인생 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