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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hua Dec 20. 2023

취미는 헌책이고요, 특기는 수집입니다.

  나는 취미가 다양한 편이다. 그리고 보편적이지도 않은 편이다. 누구나 한번 쯤은 가져볼법한 취미들 예컨대 식물 키우기, 웨이트 트레이닝, 신발 수집 등과 같은 취미들은 단 한 번도 재미를 붙여본 적이 없다. 그래서 늘 혼자서 취미 생활을 즐겼다. 몇가지 나열을 해보자면 크리켓 관람하기, 그라피티 이미지 수집하기, B급 괴수 영화 관람하기, 그리고 희귀한 헌책 수집하기다. 


  누군가를 새로이 만나는 자리에서 취미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언제나 헌책 수집이 가장 주목을 받는다. 아무래도 크리켓은 익숙한 사람보다 금시초문인 경우가 더 많고, 그라피티 이미지는 희한한 취미이긴 하나 그게 다라서 더 이야기를 나눌 것도 없다. 그러나 헌책 수집 같은 경우는 누구나 다 한번 쯤은 헌책방에 가본데다가 무슨 책을 주로 모으는지, 그렇다면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지,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지 괴테를 좋아하는지 등과 같이 대화 소재가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상대와의 첫만남에서 어색함을 깨는 취미 공유에 대해서 설파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독서광에서 헌책 수집가 그리고 이제는 헌책으로 재테크까지, 나와 늘 함께 해온 헌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오늘은 그리고 내가 언제 처음으로 헌책을 구매했으며, 그게 어떻게 수집으로 이어졌는지 이야기 해보겠다. 


  때는 2015년 초여름이었다. 나는 다니던 공과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예술대학 입시를 새롭게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지방에는 영화과나 극작과 입시를 가르치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혼자서 모든 입시 관문을 독파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늘 매일같이 도서관이나 카페에 다니면서 작문 연습과 미학 공부를 했었다. 하지만 공립 도서관에 예술 전문 서적이 다양하게 구비될리는 없었다. 결국 부득이하게 생활비를 쪼개가면서 책을 구비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이야 오만원이 훌쩍 넘는 경우가 예사지만 당시에도 새책 두권만 사도 삼만원이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자연히 헌책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거리를 걷다가 알라딘 서점이 보여서 자연스레 들어갔다. 당시 나에게 알라딘은 영화광에게 한국 영상자료원, 힙스터들에게 케익샵과 같은 공간이었다. 저렴한 책과 언제나 열려있는 화장실, 그리고 오래 있어도 눈치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밥 먹듯이 드나들었다. 여하튼 알라딘에 들러서 세계문학 코너를 돌다가 사르트르의 구토가 있길래 무심코 집어 들어서 구매했다. 그러곤 한달 내내 그 책만 읽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구토는 하서 출판사의 93년판본으로 지금은 찾아 읽기 어려운 사르트르이 단편 소설 <지도자의 어린 시절>이 수록되어있었다. 



  하서 출판사의 <구토>는 어부지리로 얻은 수확이었지만 내가 직접 스스로의 의지로 어렵게 구한 헌책은 카프카의 <젊은 산책가의 노트>였다. 지금은 새롭게 번역이 되어 출간되었고, 그로 인해서 해당 서적도 중고 매물이 흔하게 나와있지만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6년에는 매물이 그리 흔치 않았다. 다시 회고해보면 그다지 희귀한 판본은 아닌 것 같아 지금 나의 노하우라면 손쉽게 게다가 그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초짜 수집가였던 나는 몇주에 걸쳐 모든 온라인 중고 서점 웹사이트를 찾아 검색했고, 운좋게 예스24에 딱 하나 남은 그 책을 구해 손에 얻었다. 입체파적인 모래색 바탕에 붉은 나뭇가지가 조그맣게 그려진 책 표지도 왠지 카프카의 기묘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고, 또 게다가 젊은 산책가의 노트라니 당시 산책을 하며 소재 궁리를 하는 재미에 빠진 나로선 너무나 매력적인 책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부터 나는 비로소 헌책, 그 종에서도 희귀본을 손에 쥐는 매력에 빠졌다. 그 후로 희귀 서적 중에서도 헌터들이라면 모두가 다 가지고 싶어하는 책들, 학원사 세계문학, 셰익스피어 삼정판, 인류의 범죄사, 자유추리문고 등을 손에 넣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흔히들 왜 희귀본을 수집하는지, 그게 왜 재미있는지를 물어본다. 답은 책이라는 매체에 있다. 희귀한 신발이나 가방은 소유하는 건 물건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책의 가치는 사각형의 모양, 색깔, 표지 디자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 즉 이야기에 있다. 따라서 국내에 몇 없는 진귀한 서적을 지닌다는 것은 이 책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나만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사실 나는 희귀한 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희귀한 이야기를 갖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몇년을 기다리고 헤맸던 책이 책장에 꽂혀있는 것보다는 모두가 그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만 나는 이미 읽었고, 얼마든지 원할 때 마다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뿌듯했다. 이야기는 있지만 기록은 찾을 수 없는, 정신은 있지만 몸은 없는, 그런 소문만 무성한 이야기를 내가 간직하는 기분이란 묘한 특권의식을 지니게 한다. 그리고  누군가 그런 소문만 무성한 이야기를 읽고 싶어할 때 내가 고이 잘 간직하고 있다가 그 이야기를 빌려주면 마치 오랜 옛날, 전국을 유랑하며 이야기가 고픈 사람들에게 자기가 꼭꼭 수집해온 진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음유시인이 된 것 같아 기쁨이 배가 된다. 


   책이란 그 자체로선 조명을 받기 힘들다. 책의 본분은 형태나 모양이 아니라 그것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책이 절판되어 버리고나면 그것이 기록하고 있던 이야기가 진귀해지기 시작하면서 도리어 책의 존재가 빛나기 시작한다. 기록의 홍수 속에 살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절판되어 버린 헌책 더미를 뒤지고 다니는 수집가로서 느낄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현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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