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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hua Jan 18. 2024

내 헌책이 이렇게 비쌀리 없어!

  연구를 많이 하는 대학원생이나,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빈번히 겪는 일이 있다. 어떤 책을 구하려고 보니 절판이어서 헌책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가격이 정가의 두 세배는 뛰어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런 기분이 들 것이다. 

  "책을 팔 땐 파지 수준으로 매입을 하면서 책을 살 땐 왜 이렇게 비쌀까?" 

  억울한 기분이 들만도 하다. 나도 한 때 알라딘 매장에다가 책을 판 적이 있고, 일반 개인 현책방에다가도 책을 판 적이 있다. 과거 나는 평균적으로 4천원을 웃도는 알라딘 매장의 헌책 가격을 보고, 못해도 책 열권을 팔면 이, 삼만원은 쳐줄줄 알았는데, 웬걸 손에 돌아온건 고작 천원 한장과 동전 몇푼이었다. 물론 이 미스테리한 가격 구조에 대해서도 나름의 복잡한 이유와 논리가 있고, 비싸게 되팔기 위해서는 그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버릴만한 책이기 때문에 값을 쳐주지 않는 것이다. 헌책방을 자주 다녀본 이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입구를 들어와 책꽂이를 스윽 둘러보면 그 집에 있는 책이 이 집에 있고, 내 책장이나 친구네 책장에 있는 책들도 흔히 보인다. 다빈치 코드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뱀장어 스튜가 수록된 2002년 이상문학상 당선집, 신의 지문, 세계대전 Z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헌책방에 대량으로 매입 신청한 책들은 버리긴 아깝고, 소장하긴 싫은 것들이었다. 따라서 모든 투자 원칙이 그렇겠지만 본래의가치보다 저평가된 물건을 사야한다. 다시 말해 나중에 차익을 남겨 책을 되팔기 위해서는 애초부터 팔릴만한 책들을 사야한다는 뜻이다. 

  한 때 큰 인기를 구가했지만 느닷없이 절판이 되어 버린 책,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라던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같은 책들이 가장 비싸고 이러한 책들은 가격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둘째로 분야 자체가 협소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인쇄를 적게 한 책들, 가령 미학, 철학, 연극 이론 등의 책들이다. 이러한 책들은 처음부터 적은 수량을 계획하고 나오지만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 책이기 때문에 절판이 된 이후에 가격이 크게 오른다.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나 콜린 윌슨의 인류의 범죄사가 그러하다. 마지막으로는 근기간에 절판된 책들이다. 이는 주로 장르 문학이 그렇다. 장르 문학 특성상 독자의 폭이 넓지 않으므로 적은 수량으로 출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늘 언제나 절판이 될 각오를 하고 있다. 그러다가 예상대로 절판이 되고 나면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다. 크게는 열배 가까이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추후의 변동을 잘 살펴야 한다. 실제로 풀린 물량이 적어서 그대로 웃돈을 주고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희귀본이 되는 경우가 있고, 가격이 오른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되팔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정가보다도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좌우지간 책을 사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천정부지로 솟는 헌책의 가격을 보고 반가울리는 만무하다. 행여 가격이 오른 책이 반드시 참고해야하는 서적이라면 골치는 더 아프다. 과거의 나 또한 가격이 몇배나 뛰어오른 헌책을 마주하는 상황에 놓여 늘 투덜거렸지만 결국엔 거금을 들여 책을 구매하고는 했다. 지출의 쓴맛 보다는 그래도 국내에 몇 없는 자료를 바로 내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짜릿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전이 필요할 때 처리할 수도 있으니 책장에 말끔하게 꽂혀만 있다면 부동산이 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었다. 오래전 정가를 주고 구했거나, 혹은 헌책방에서 헐값에 사들인 책인데 

얼마간 시간이 지나 그 책이 절판이 되어 수배의 가격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후에 들어서 헌책을 본격적인 나만의 소액 투자로 삼고 나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과거에 책이 단지 수집 대상이었을 적에는 괜히 자다가 떡 얻어먹는 기분이기도 하고, 또  무언가 나의 안목이 인정 받은 것 같아 그만큼 기쁜 일이 없었다. 기억이 나는 책이 두 권이 있다. 하나는 살바도르 달리의 자서전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와 시로다이라 교의 <허구추리>다. 현재 허구추리는 중고 매물이 쏟아져서 가격이 잠시 낮아졌지만 한 때는 한권당 7, 8만원에 이르기도 했다. 


전라도 광주의 터미널에서 구매한 달리의 자서전


  그런데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은 책은 달리의 자서전이다. 위의 사진이 바로 내가 약 십여년 전에 구매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자서전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다. 모종의 일로 광주에 방문할 일이 있어 일을 보고 돌아오던 중, 고속 버스 터미널에 위치한 영풍문고에서 구매했다. 일부러 찾아서 구매한 것은 아니고 어쩌다보니 매대를 둘러보다가 덥썩 집어 구매한 것이다. 그런데 때는 절묘하게도 당시 다니던 공과대학이 다니기 싫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영화 만드는 일에 도전해볼까 고민하던 찰나,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아마 이 책을 집어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의 모습은 없었을 수도 있다고 감히 자부한다. 어머니의 자궁 속의 일을 기억한다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근세기 최고 괴짜 예술가의 일생 이야기를 듣는 일은 그 어떤 이에게도 무수한 창작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그 해의 여름 내내 이 책을 끼고 다니면서 지루한 화학 수업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카페에 들어앉아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학교 출석은 한달에 서너번에 불과할 정도로 결석을 밥 먹듯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살바도르 달리도 마드리드 예술대학의 수업을 밥 먹듯이 빼먹었기 때문이었다. 그 해 여름, 얼마나 이 책을 자주 읽었는지 단골 카페 사장님께서도 이 책을 기억하실 지경이었다. 여하간 나는 이 책 덕분에 초현실주의를 깊게 알게 되었고, 내가 가장 흠모하는 예술가 루이스 부뉴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상업 영화보다는 예술 영화, 실험 영화를 파고 들게 되는 힙스터 기질을 얻게 되었고, 실험 영화를 파고들다 보니 나의 배회 영역은 극장에서 뮤지움으로 갤러리로 넓어졌다. 훗날에는 실제로 극영화보다는 실험 영화를 배우고 싶어 영화과가 아닌 현대 미술을 전공하게 되었다. 만약 그 때 당시 내가 달리의 자서전이 아니라 고흐의 자서전을 골랐다면, 혹은 구겐하임을, 아니면 봉준호나 카메론의 평전을 골라 집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물론 이들도 훌륭한 예술가 및 콜렉터이지만 그래도 내 취향 상 달리의 자서전을 고른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그의 기상천외한 이야기 덕분에 책 읽는 즐거움을 다시 되찾게 되었고, 창작의 용기를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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