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는 임금의 얼굴을 그린 어용 화사였으나 신분이 낮아 무록직으로 장원서, 사포서, 빙고, 울산 목장, 안기 역을 거쳐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목격하고 그들을 그렸습니다.
임금의 명으로 영동 9개 군과 금강산으로 봉명 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중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인 고을 현감(연풍. 충청도 괴산 옆의 작은 마을)까지 지내며 흉년에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 백성들을 구제하기도 했지만 아전들의 모함으로 파직되어 의금부에 끌려갈 뻔하기도 했지요. 정조의 총애로 사면이 된 것이 아니라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발표한 수백 명의 사면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라고 하니 임금도 참 무심한 분 같습니다. (일성록, 사면 명단.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타고난 재주로 신분을 뛰어넘는 기회를 누리기도 했으나 그러한 만큼 불려 다니느라 사생과 애환도 깊은 삶이 아닌가 싶네요. 파직 후 장사치의 호의로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으니 밀이죠... 참 고달픈 삶이 아닐 수 없네요... 애처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