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0일
살아가다
살아간다
살아갔다
살아내다
살아낸다
살아냈다
가는 것과 내는 것의 사이, 거기에 서 있다. 바깥에 나갈 때면 꼭 한 번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순옥이 죽기 얼마 전, 우리는 그런 약속을 했다. 내가 죽으면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인사하자고. 그러면 당신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며 손 흔들어 달라고. 낮에도 하늘에는 빛나는 것이 떠 있다. 흐린 눈으로 그것들을 찾아내면서, 무엇이 그녀인지 가늠해보곤 한다. 그러다 어느 때면 그녀는 별이 아니라 하늘이라고, 온 하늘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본다.
김혜순 시인은 어머니가 죽은 후로 온 하늘을 어머니의 피부라고, 자신은 어머니의 피부 아래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건 다행인 걸까? 내게 있어 그 말은 세상과 화해하는 행위 같다. 태어나 버리고 성장한 끝에 마주하게 되는 긴 고독. 그러나 내가 누군가의 피부 아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삶이란 죽은 자들의 거대한 피부로 감싸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조금 덜 고독해질까? 시인에게 물어보고 싶다. 세상과 화해하였는지, 화해하고 싶었는지, 그래서 평온한지.
올해에는 일을 해야 한다, 고 생각한다. 직장을 갖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