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들

2025년 1월 1일

by 정우현

수원에 와 있다. 대구에서, 어떠한 마음을 지닌 채 온 건 아니다. 가족들이 떠밀었다. 쉬고 오라고, 친구들도 만나고 하면서 사람 구경도 하고 환기도 하랬다. 그러려고 해보기는 하지만, 그다지 내키지는 않는다. 오늘 휘가 수원에 올 것이고, 다음 주에는 실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몇 사람과 더 만나기 위해 연락을 나누고 있지만. 이 곳이 아닌 저곳으로, 저곳도 아닌, 그곳조차 아닌, 그저 도망치는데 모든 것을 소비하는 그런 마음…….


친구, 가족, 문장, 하루, 삶. 이어진 것은 잇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 일이 힘에 부친다는 말을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해왔다. 한때는 좌절의 결과로 또 한 때는 병증으로 그 말을 진단했다. 이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말이 아니라 원인에 관한 이야기다. 그 말에 있어서 나는 이제 더는 바깥에서 헤매고 싶지 않다. 오래된 나무의 가지처럼, 더는 열매도 꽃도 피우지 않고, 죽었는데도 쓰러지질 않고 겨울바람을 맞으며, 한 해의 마지막에 선, 비쩍 마른 나무의 가지처럼, 검고 마른 발이 떠오른다. 나는 그냥 사라지고 싶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장례식이 끝난 후, 순옥을 두 차례 꿈에서 만났다. 해가 뜨면 세부적인 것들은 잊혀지고마는 꿈속의 이야기들. 그러나 두 꿈은 같은 방식으로 끝이 나고, 그래선지 결말만은 잊히지 않는다. 순옥을 안으면, 나는 순옥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이 꿈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는 입을 다문다. 그런데도 꿈은 무너진다.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애써보아도, 어느샌가 나도 순옥도 말이 없고, 말할 수 없고, 몸을 벗어난 시선은 끌어안은 나와 순옥을 바라보고, 주변이 흐려지고, 밝아지며, 그렇게 눈이 떠진다. 산 자에게는 찾아갈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 세계. 추방당한 나는 몇 번 소처럼 울고 다시 눈도 감아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다음 번의 만남에는 기약이 없다.


장례식 이튿날 밤에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기에 아버지를 용서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는 다시 또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를 용서할테니 오래, 아주 오래 꿈 속에 머무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내가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었다면 이 모든 말을 한치의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더 행복했을까, 아니면 기약없는 기다림에 결국 지쳐버렸을까. 누구나 갖지 못한 것을 더 탐내는 법이다. 꿈이 없는 나는 꿈의 등장인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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