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엄마 없이 보낸 첫 추석
작년 12월, 엄마는 오랜 이 땅의 삶을 마치고 하늘나라에 영면하셨다.
엄마와 남동생들이 살던 집은 이제 엄마 없이 동생들만 살고 있다.
다리가 아프신 엄마를 위해 마련했던
빌라 1층 집. 그동안은 오래된 2층 양옥집 1층에서 사시다가, 작년 형제들이 힘을 모아 새로 마련한 빌라였다.
작년 9월, 한 달간의 요양병원 입원 생활을 마치고 계신 동안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해드렸다.
새 가전제품과 새 가구를 장만하고, 무더운 여름 땀 뻘뻘 흘려가며 형제들과 고생해 마련한 새집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딱 두 달만 사시고 11월에 응급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신 후, 한 달 만에 서둘러 떠나셨다.
오래된 집에서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새집에 두 달만 사시고 떠나신 것이다.
엄마가 떠난 사실도 슬펐지만, 평생 고생하시다가 새집에서 조금은 편히 지내시길 바랐던 마음 때문에 더욱 슬펐다.
새집, 엄마의 커다란 새 방을 보고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새집에서 처음 살아본다”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10개월이 지났는데도 어제 일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나는 3남 1녀 중 외동딸이다.
다정하시고 애정 표현이 많으셨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무던한 성격이라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으셨다.
공부를 좋아하고 성적도 좋았던 나는 늘 상장도 많이 받아왔고, 아빠는 늘 입이 마르게 칭찬해 주셨지만 엄마는 내색을 잘 안 하셨다.
어릴 땐 그게 많이 서운했다.
그런데 가족들에게서, 내가 없을 때는 엄마가 늘 나를 칭찬하시고
“우리 딸이 최고다. 뭐든지 알아서 다 한다"라고 자랑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도 직접 듣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칭찬을 아끼셨을까, 엄마가 떠난 후에야 알게 됐다.
사랑이 많으셨던 아빠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3년 동안 밤마다 울었다.
아마 엄마까지도 아빠처럼 표현이 많으셨다면, 엄마를 보내고 나는 더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는 그것마저 아시고 무던하게 계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추석은 엄마 없이 처음 맞는 추석이다.
연휴가 시작되면서부터 마음이 무겁고 슬펐다.
작년 추석, 새집에서 내가 차려 드린 밥상을 너무 기뻐하시며 맛있게 드셨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동안 글쓰기를 하면서 엄마 생각을 일부러 많이 안 했는데, 추석이 되니 유난히 엄마가 그리웠다.
원래는 내일 성묘만 하고 엄마 집에는 가지 않으려 했다.
엄마 집에 가면 더 슬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석날 아침,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음식 준비했으니 와서 같이 먹자.”
그냥 혼자 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결국 가기로 했다.
엄마 집으로 가는 길부터 눈물이 났다.
하지만 막상 동생들과 얘기 나누며 밥을 먹으니 조금은 덜 슬펐다.
지난봄, 동생들에게 내가 시작한 블로그 얘기를 했었는데 이번엔 브런치 작가가 된 이야기와, 초기에 쓴 시들을 모아 학원에서 손수 만든 시집도 보여주었다.
그중 엄마를 생각하며 쓴 「천국」이라는 시를 읽어주는데, 한 줄 읽고 먹먹해 멈추고 또 한 줄 읽고 멈추기를 반복하다 결국 다 같이 대성통곡을 했다.
그래도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후련했다.
저녁까지 함께 먹고, 오랜만에 내가 “노래방 가자"라고 제안했다.
어른 되고 나서 처음으로 같이 간 것 같다.
나만 노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동생들도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르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자주 부르던 「아득히 먼 곳」을 불렀다.
“가만히 생각하면 아득히 먼 곳이라 허전한 이 내 맘에 눈물 적시네.”
가사가 너무 슬퍼서 또 눈물이 났다.
하지만 노래에 마음을 실어 보내니 슬픔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밖에는 연휴 내내 가을비가 내렸다.
마치 하늘이 나 대신 울어주는 듯했다.
노래방에서 눈물과 웃음이 교차한 시간을 보내고, 엄마 집으로 돌아와 엄마 사진을 꺼내 놓았다.
그 옆에 내가 만든 시집 「헤아려본 슬픔」을 세워 두고, 엄마를 생각하며 편안히 잠들었다.
내 안에 고여 있던 슬픔과 그리움, 먹먹함이 씻겨 내려간 추석이었다.
엄마 살아계실 때는 추석마다 4남매가 한자리에 모인 적이 거의 없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각자 바빠서 따로 오거나, 함께 식사도 잘 못했다.
그런데 엄마가 떠나신 후, 지난 구정에도 다 같이 성묘 다녀오고 식사를 했고 이번 추석도 그랬다.
엄마가 살아계실 땐 늘 원하시던 모습이었는데, 돌아가신 후에야 우리가 그렇게 모였다.
오늘도 연휴지만 나는 글을 쓰러 카페에 왔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하는 매일의 루틴을 지키기 위해서다.
엄마 이야기를 쓰면 너무 슬플 줄 알았는데, 막상 다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요즘 블로그 초심을 되찾은 것 같다.
방문객이 많아지고 댓글이 늘면서 이웃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는데, 지난 8월 권태기를 지나 다른 플랫폼까지 함께 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찾은 것이다.
엄마를 보내고 느낀 슬픔과 허전함 때문에 시작한 블로그였다.
그 슬픔을 시에도, 소설에도, 에세이에도 쏟아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누군가의 반응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글쓰기를 통해 내 마음을 내려놓고, 그 글이 누군가 한 사람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숫자로만 보이는 반응 보다, 한 사람의 진심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나를 글쓰기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하늘에서 이런 나를 흐뭇하게 지켜보실 엄마를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인생을 쓴다. 그리고 행복하다.
#추석이야기 #엄마생각 #엄마그리움 #첫추석 #가족이야기 #아득히먼곳 #노래방추억 #눈물과위로 #블로그챌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