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야니스카시] 너무 빨리 달려서 영혼을 잃어버린 날

by 에반 환 Evan 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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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어 '코야니스카시(Koyaanisqatsi)'가 묻는 삶의 속도에 대하여


쉴 새 없이 울리는 신경질적인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아직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만원 지하철에 오릅니다. 흔들리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대신, 우리는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 화면을 끊임없이 위로 쓸어 올립니다. 15초짜리 짧은 영상들을 1.5배속으로 소비하고, 밀린 드라마는 줄거리 요약본으로 빠르게 해치웁니다. 점심시간에는 모니터 앞에서 샌드위치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퇴근 후에도 내일 처리해야 할 업무 생각에 머릿속이 분주합니다.


누구보다 바쁘게, 누구보다 치열하고 빠르게 살아가고 있는데 문득 거울을 보면 텅 빈 눈동자를 한 낯선 얼굴이 서 있습니다. 가슴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시린 바람이 불어오고, 이유 없는 무기력함이 온몸을 짓누릅니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북미 대륙의 붉은 사막과 깎아지른 협곡의 척박한 땅에 기대어 살아온 호피(Hopi) 인디언들. '평화의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그들의 언어는 이제 소수의 노인들만이 기억하는, 서서히 숨을 거두고 있는 멸종 위기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수천 년의 자연과 맞닿은 지혜를 담아 만들어낸 어떤 단어 하나는, 지금의 소란스럽고 아슬아슬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뼈아픈 경고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바로 '코야니스카시(Koyaanisqatsi)'입니다.


이 묵직하고 주술 같은 낯선 단어의 뜻은 ‘균형을 잃어버린 삶(Life out of balance)’, 혹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Crazy life)’입니다. 나아가 ‘이대로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어,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하는 위태로운 상태’라는 아주 절박하고 철학적인 의미까지 품고 있습니다.


옛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광활한 초원을 달리다가도, 이따금씩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길을 한참 동안 가만히 뒤돌아보았다고 합니다. 행여나 자신이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미처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자신의 영혼이 길을 잃었을까 봐 기다려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영혼의 걸음걸이는 육체의 속도보다 훨씬 느리고 조심스러워서,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속도에만 집착하다 보면 어느새 껍데기만 남은 채 허우적거리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거대한 '코야니스카시'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는 클릭 몇 번으로 지구 반대편의 물건을 내일 새벽 문 앞으로 배송받고,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1초 만에 알 수 있는 눈부신 효율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술은 우리에게 시간을 아껴준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일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해지고 빨라졌는데, 우리는 왜 늘 시간에 쫓기고, 불안하며, 만성적인 우울과 '번아웃(Burnout)'에 시달리는 걸까요?


효율과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삶의 여백들을 빽빽한 일정표로 채워 넣었습니다.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시간, 목적지 없이 그저 골목을 걷는 시간, 빗소리를 들으며 차가 우려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느리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을 가차 없이 삶에서 도려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지독한 강박과,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증명해 내야 한다는 피로감이 똬리를 틀었습니다.


마치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팽이처럼,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회전하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더 빨리 돌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은 공포심에 채찍질을 멈추지 못합니다. 영혼이 따라올 틈조차 주지 않은 채 말입니다.


글을 짓는 사람으로서 저 역시 이 가혹한 속도전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더 새롭고 좋은 글을 빨리 써내야 한다는 막연한 조급함, 타인의 화려한 성취를 보며 느끼는 초라함에 휩쓸려 밤잠을 설칠 때면, 제 안의 영혼이 저만치 뒤처져 헉헉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눈을 감고 이 투박한 호피족의 단어를 입안에서 천천히, 아주 느리게 굴려봅니다. 코-야-니-스-카-시.


비록 이 단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멸종의 위기 앞에 서 있지만, 이 단어가 가리키는 '균형 잃은 삶'이라는 현상만큼은 현대 사회에서 무서운 속도로 증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호피족 사람들은 먼 미래에 인류에게 닥쳐올 이 속도의 비극을 예견하고, 우리에게 처절한 브레이크를 걸어주기 위해 이 단어를 그토록 오래도록 품고 지켜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 삶의 속도계는 얼마를 가리키고 있었나요?

혹시 너무 빨리 달리느라, 길가에 피어난 작은 꽃의 안부를 묻는 법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나요? 당신의 영혼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저 멀리서 당신의 뒷모습만 애타게 부르고 있지는 않은가요.


이번 주에는 잠시 삶의 시동을 끄고, 세상과 연결된 스마트폰의 전원도 꺼두고 가만히 멈춰 서보기를 권합니다. 목적지 없이 동네를 느리게 산책하고, 끓어오르는 주전자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뒤처져 있던 당신의 영혼이 마침내 당신의 어깨 위에 무사히 내려앉아 쉴 수 있도록, 기꺼이 곁을 내어주는 텅 빈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미쳐 돌아가는 '코야니스카시'의 세상 속에서 온전한 나를 잃지 않고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남들보다 한 걸음 늦게 걷기를 선택하는 다정한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영혼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며, 당신의 고요한 오늘에 잊혀져 가는 인디언의 단어로 다정한 안부를 전합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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