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추아르포크]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려본 적 있나요

이누이트어 '익추아르포크' 가 알려주는 기다림의 의미

by 에반 환 Evan Hwan


당신의 '문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나요

이누이트어 '익추아르포크' 가 알려주는 기다림의 의미


끝없이 펼쳐진 북극의 하얀 설원.

그 차갑고 고요한 얼음의 땅에 사는 이누이트족에게는 얼어붙은 몸을 녹여줄 만큼 아주 사랑스러운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익추아르포크(Iktsuarpok)'입니다.


"혹시 그 사람이 오고 있을까?"

누군가 오기로 한 시간이 다가올 때, 엉덩이를 들썩이며 자꾸만 문밖을 서성이게 되는 마음. 발뒤꿈치를 들고 먼 길을 내다보는 그 애타는 설렘을 뜻하는 말입니다.


눈보라가 치는 매서운 날씨 속에서도, 이누이트 사람들은 털옷을 여미며 몇 번이고 이글루 밖을 들락거렸을 겁니다.


저 멀리서 개썰매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이면서요. 누군가를 기다려본 사람만이 아는 그 조급하고도 다정한 발걸음이 이 단어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익추아르포크'는 어떤 모습일까요?


현대인들은 더 이상 추위에 떨며 문밖을 서성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밖은 이제 '스마트폰 액정'이 되었으니까요.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개를 숙여 작은 화면 속의 문밖을 내다봅니다.


내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옆의 숫자 '1'이 언제 사라질지 서성이고, SNS에 올린 사진에 누가 '좋아요'를 눌러주지는 않을지 자꾸만 새로고침을 누릅니다.


하지만 그토록 쉽게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는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의 기다림은 북극의 설원보다 더 차갑고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진짜 체온을 나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알림창을 채워줄 의미 없는 자극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릴 적, 우리는 모두 '익추아르포크'의 달인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난 뒤 골목 어귀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발로 흙장난을 치던 시간. 혹은 퇴근하고 돌아오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를 기대하며, 현관문 바깥의 발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던 저녁.


그때의 기다림에는 분명 온도가 있었습니다. 손발은 조금 시렸을지 몰라도, 철컥 하고 문이 열리며 훅 끼쳐오는 사람의 온기와 반가운 얼굴이 그 모든 지루함을 단숨에 보상해 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액정 너머의 기다림에는 체온이 없습니다.


'띠링' 하는 기계적인 알림음은 찰나의 도파민을 줄 뿐,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안아주지는 못합니다. 눈보라를 뚫고 나를 찾아온 사람과, 알고리즘에 떠밀려 내 피드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의 무게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랜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밤이 되면 어김없이 텅 빈 방 안에서 시린 공허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최근에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려본 적이 있나요?

문고리를 잡고 서서, 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의 실루엣만으로도 가슴이 쿵쾅거렸던 적이 언제였나요.


'익추아르포크'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삶에 그토록 간절히 기다릴 만한 사람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내 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기꺼이 그 사람의 자리를 비워두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하루쯤은 스마트폰 화면 속의 숫자들을 기다리는 대신, 진짜 당신의 문을 두드려줄 누군가를 떠올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전화를 걸어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싱거운 약속이라도 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의 문밖을 서성이는 그 애타는 발걸음이, 결코 헛되지 않은 따뜻한 만남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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