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흘라피나타파이]우리는 사랑하면서도 침묵하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절실했던 그 눈빛에 대하여

by 에반 환 Evan Hwan


세상에서 가장 슬픈 침묵, '마미흘라피나타파이'

: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절실했던 그 눈빛에 대하여


2022년 2월, 지구의 끝이라 불리는 칠레의 티에라델푸에고 섬에서 한 할머니가 눈을 감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칼데론.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야간(Yaghan)족의 마지막 순수 혈통이자, 야간 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부고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불타버린 것과 같았고, 인류가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창문 하나가 영원히 닫힌 사건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부고 기사를 읽으며, 문득 그녀가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을 단어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기네스북에 '가장 뜻이 함축적인 단어'이자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로 등재된 그 말.


바로 '마미흘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입니다.


Mamihlapinatapai (명사)

"서로에게 꼭 필요한 어떤 일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혹시 거절당할까 두려워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서로 바라만 보는 눈빛."


겁쟁이들을 위한 단어

이 길고 복잡한 단어를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마-미-흘-라-피-나-타-파-이. 혀끝에서 맴도는 이 낯선 소리가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마미흘라피나타파이'의 순간을 겪습니다.


썸을 타던 그 애와 카페에 마주 앉아 커피 잔만 만지작거리던 시간,

다툰 다음 날 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부부 사이에 흐르던 무거운 정적,

혹은 오랜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어색하게 웃어넘기던 순간들.


"네가 먼저 말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내가 먼저 말해서 상처받기는 싫어."


그 비겁하고도 간절한 마음을 야간족 사람들은 단어 하나로 정의했습니다. 그들에게 침묵은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말보다 더 뜨거운 욕망과 두려움이 소용돌이치는 꽉 찬 시간이었습니다.


멸종된 것은 언어일까, 우리의 용기일까

현대 사회에는 수만 개의 단어가 넘쳐납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1초 만에 지구 반대편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이모티콘 하나로 기분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마미흘라피나타파이'는 더 깊어졌습니다.


카카오톡의 숫자 '1'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가슴을 졸이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보내지 못한 문장들이 휴지통에 쌓여갑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쿨해 보이려고, 우리는 자꾸만 입을 다뭅니다.


크리스티나 할머니가 떠나면서 이 단어는 공식적으로 '사어(死語)'가 되었습니다. 이제 지구상에 이 단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단어가 품고 있는 그 '망설임의 정서'만큼은 멸종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통이 너무나 쉬워진 이 시대에, 진심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겁쟁이들은 더 늘어만 갑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침묵을 깨는 용기에 대하여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 사라져 가는 말들을 수집하여 이야기라는 집을 짓습니다. 내가 멸종위기 언어 사전을 펼치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단어들이 멸종된 이유가,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의 본질'과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혹시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제발 내 마음을 알아줘'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지는 않았나요?


내일은 용기를 내어보려 합니다. '마미흘라피나타파이'라는 긴 침묵 대신, "좋아해", "미안해", "고마워"라는 짧고 투박한 진심을 건네보려 합니다.


이 아름다운 단어가 사전 속에 박제된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눈빛으로만 머뭇거리지 말고 '입을 열어 서로를 안아주라'는 마지막 인류의 유언일지도 모르니까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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