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의 벽난로 속에서 장작이 콰직,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 소리에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칠레의 하얀 지옥을 내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찻잔의 온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3년 전 서울의 유난히 차가웠던 그날의 기억이 뜨거운 증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익추아르포크'. 누군가가 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창밖을 내다보는 이누이트의 그 지독한 기다림의 단어. 그 단어가 우리를 다시 과거의 그 시간, 그 결정적인 엇갈림의 교차로로 데려갔다.
3년 전, 서울. 혜화동의 어느 골목 깊숙이 자리 잡은 카페 '시간의 틈'.
서윤은 카페 가장 안쪽, 창밖이 내다보이되 지나가는 사람들과는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어중간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 앞에는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가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잔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녀의 온 신경은 오직 하나, 카페의 낡은 목재 문에 달려 있었다.
도둑처럼 찾아온 겨울은 매서웠다. 문이 열릴 때마다 찬바람과 함께 낯선 이들의 표정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딸랑, 하는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서윤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 굳었다가 이내 힘없이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았다. 액정 화면 위로 흘러가는 가벼운 텍스트로는 그녀의 가슴 속에 팽팽하게 당겨진 절박함의 무게를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그가 이 문을 열고 들어와 굳어진 얼굴을 풀고 자신을 바라봐주는, 그 온전한 '육체적인 출현'이었다.
"네가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나도 널 잡을 명분이 없어."
그것은 이별 통보가 아니었다. 3년 동안 내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에 갇혀 그녀를 방치했던 시간들에 대한 마지막 경고이자, 제발 침묵의 감옥을 깨고 나와 자신을 안아달라는 간절한 SOS였다. 서윤은 그 SOS에 대한 대답이 이 낡은 목조 문을 통해 들어올 것이라 믿으며, 침묵을 견디는 대신 '물리적인 기다림'을 고집했다. 그녀는 그저 그가 이 공간으로 걸어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오해가 봄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 믿었던 바보였다.
같은 시간, 카페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인 내 15평 오피스텔.
나는 가죽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액정 화면은 켜졌다가 꺼지기를 사십 분째 반복하고 있었다. '카카오톡'의 친구 목록, 서윤의 프로필 사진 밑에 뜬 단조로운 상태 메시지 '......'를 보며 나는 내 마음속의 불안을 번역하려 애썼다.
그녀가 "시간 좀 갖자"는 말을 남기고 오피스텔을 나간 지 삼 일째였다. 나는 그 삼 일 동안 퇴로를 완전히 끊어버린 병사처럼, 이 좁은 오피스텔에 고립되어 있었다. 소설가랍시고 수만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에게 보낼 "미안해, 돌아와"라는 평범한 세 글자를 조합하는 법은 잊어버린 멍청이였다.
나는 그녀가 카페 '시간의 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우리는 연애 시절에도 그곳을 특별히 우리만의 아지트라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 기다림은 오직 하나, 이 차가운 액정 화면 위로 그녀의 알림음이 울리는 온전한 '디지털 출현'뿐이었다.
"네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나도 널 잡을 용기가 없어."
내 침묵은 존중이 아니었다. 거절당할까 봐, 혹은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 웅크린 비겁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라는 불안한 존재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 하는 절규라고 오독(誤讀)했고, 그래서 그녀가 먼저 연락을 주어 나에게 '존중받아도 되는 자격'을 허락해주기를, 이 차가운 화면을 바라보며 간절히 '디지털 익추아르포크'를 하고 있었던 바보였다.
카페 '시간의 틈'의 낡은 괘종시계가 오후 9시를 알리며 무겁게 울렸다. 서윤은 시계를 바라보고, 다시 굳게 닫힌 목조 문을 바라보았다. 9시. 우리가 싸우고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혹독한 빙하기의 시작을 알렸던 그 시간이었다.
딸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카페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 놓인 에스프레소는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서윤은 천천히 가디건 자락을 여미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제 문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 문은 이제 그가 들어오는 통로가 아니라, 그가 영원히 들어오지 않음을 확인하는 멸종의 선언이었다.
같은 시각, 오피스텔의 스마트폰 액정 화면이 꺼졌다. 나는 꺼진 화면 위로 비치는 내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9시. 그녀가 연락을 주기로 했던, 그 얄팍한 희망의 마지노선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소파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더 이상 알림음은 울리지 않을 것이었다. 내게 그 꺼진 액정 화면은 이제 그녀의 소식이 들려오는 창구가 아니라, 그녀가 나를 완전히 잊었음을 확인하는 침묵의 무덤이었다.
그 결정적인 순간. 15분의 거리라는 물리적인 공간은 수만 킬로미터의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계를 찬 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간절히 원했다. 나는 차가운 액정 화면을 바라보며 침묵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녀를 기다렸고, 그녀는 낡은 목조 문을 바라보며 출현이라는 다정한 방식으로 나를 기다렸다.
기다림의 방식이 달랐을 뿐, 우리는 서로를 간절히 원했다는 비극적인 오독(誤讀). 우리는 우리가 다루고 집필해오던 활자 안에 갇혀, 정작 살아 숨 쉬는 서로의 기다림은 읽어내지 못하는 마음의 문맹들이었다.
산장의 벽난로 속에서 장작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폭발하듯 콰직,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우리는 3년 전 서울의 유난히 차가웠던 그날의 기억에서 깨어났다.
안데스 산맥의 압도적인 백색 세상은 여전히 우리의 산장을 고립시키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서로의 시계를 오독하지 않았다. 퇴로를 완전히 끊어버린 내 입술에서, 3년 묵은 진심들이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수사여구도, 세련된 은유도, 문학적인 은폐도 없는 날것의 문장. 번역조차 필요 없는, 세상에서 가장 투박하고 촌스러운 고백이었다.
서윤은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을 속절없이 무너뜨리며, 낡은 수첩을 꺼내 사라져 가는 말들의 안부를 묻는 대신, 사라져 가던 우리의 기다림을 위해 새로운 단어를 기입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다음 페이지에는 어떤 멸종위기 언어가, 또 어떤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