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려본 적 있나요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하얀 어둠 속으로 압수당한 것 같았다. 안데스 산맥의 더 깊고 오지인, 지도에도 명확히 표시되지 않은 낡은 산장은 벌써 사흘째 고립무원의 섬이었다. 벽난로 속 장작이 타닥거리며 뱉어내는 이따금의 파열음만이 우리가 아직 살아 숨 쉬는 세계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청각 정보였다. 창밖은 그야말로 '마비'된 상태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맹렬하게 세상을 집어삼킬 듯 몰아치던 눈보라는 잦아들었지만, 대신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그리고 이제는 창문 하단까지 차오른 압도적인 눈더미가 산장의 문을 밖에서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었다.
통신 중계기는 일찌감치 얼어붙어 먹통이 되었고, 구조대와의 마지막 교신은 사흘 전 "날씨가 개이는 대로 출발하겠다"는 불안정한 무전이 전부였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것인지, 그저 이 압도적인 백색 소음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혹은 우리를 꼼짝못하게 가둔 이 수동적인 시간의 끝을 기다리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 10평 남짓한 낡은 목조 공간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사실뿐이었다.
식량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제 저녁으로 남은 딱딱한 빵 두 조각과 마른 옥수수 몇 알이 전부였다. 서윤은 아침부터 창가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녀는 벌써 사흘째, 얼어붙은 창문 앞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창문에 낀 뽀얀 서리를 문질러 닦아내고, 그 작은 투명한 구멍을 통해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내다본다. 그리고 실망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창가로 다가가 서리를 닦아낸다. 그녀의 손등은 차가운 유리에 닿아 벌써 벌겋게 터져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닐라 향이 다 날아간 빈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바라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은 위태로워 보였다. 앙상한 어깨를 감싼 두꺼운 카디건 자락이 그녀의 불안을 숨기지 못하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그 15평 오피스텔에서도 그녀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 원고 마감인지, 우리의 관계에 대한 확신인지, 혹은 그녀가 평생을 바쳐 연구해 온 멸종위기 언어들의 수수께끼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극한의 고립 속에서 그녀가 내비치는 기다림은 그 어느 때보다 날것의, 그리고 절박한 색을 띠고 있었다.
"서윤아, 좀 앉아. 손이 다 터졌잖아."
내 목소리는 사흘간 거의 쓰지 않아 갈라져 나왔다. 내 목소리에 서윤의 어깨가 흠칫, 굳어졌다. 그녀는 창밖을 향했던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서리를 닦아내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안 보여. 아무것도."
그녀의 목소리는 창밖의 설원만큼이나 시리고 건조했다. 구조대도, 지나가는 이 지역 주민도, 심지어 들짐승조차도 그 하얀 지옥 속에선 자취를 감춘 것 같았다.
"날씨가 개야 구조대가 출발할 수 있다고 했잖아. 지금은 창밖을 봐도 소용없어. 체력 아껴."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그리고 3년 전 비겁하게 침묵 뒤로 숨었던 버릇 탓에 나는 여전히 그녀의 불안을 다정하게 안아주는 법을 몰랐다. 내 말은 위로보다는 이성적인 핀잔처럼 들렸을 것이다.
서윤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얼어붙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옅은 겨울 햇살이 그녀의 눈동자를 투명하게 비췄다. 붉게 퉁퉁 부은 눈, 거칠어진 피부. 3년 만에 재회하여 티에라델푸에고의 장례식장에서 오해를 풀고 다시 손을 잡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닿지 못한 침묵의 파편들을 안고 있었다. 이 산장의 고립은 어쩌면 우리가 미처 청산하지 못한 그 침묵의 시간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구현해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소파 맞은편, 가죽이 낡아 찢어진 안락의자에 힘없이 몸을 기댔다. 그리고 거칠어진 손을 카디건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알아. 소용없다는 거. 그런데... 자꾸 손이 가. 창문을 닦아내고 확인하지 않으면, 내가 정말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 두려워. 누군가 날 찾아오고 있다는, 혹은 날씨가 개어 내가 나갈 수 있다는 그 얄팍한 증거라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그래야만 내가 아직 '기다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녀의 고백은 지난 3년 동안 내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 뒤에 숨어 비겁하게 외면해 온 '진심'의 질감을 띠고 있었다. 나는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챙그랑, 하는 작은 소리가 산장의 정적을 깨뜨렸다.
"서울에서도... 그랬어?"
나는 나도 모르게 오랫동안 마음에 묵혀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3년 전, 그 숨 막히던 침묵의 오피스텔에서, 내가 먼저 잡아주기를 바라며 그녀가 카페 문만 바라보며 내 연락을 기다리던 그 시간들.
서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시선을 내려 바닥의 나무 무늬를 무의미하게 응시했다.
"......아니. 그땐 창밖을 내다볼 기운조차 없었어. 그저 닫힌 문만 바라보며 굳어있었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혹시 네가 들어오는 게 아닐까, 혹시 네가 마음을 바꿔 날 잡으러 오는 게 아닐까...... 하지만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서서히 멸종되어 가고 있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슬픔의 밀도는 산장을 덮친 눈더미보다 무거웠다. 우리는 언어를 다루는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정작 우리 사이의 언어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사랑이 부족해서 헤어진 게 아니었다. 우리는 단지 서로의 '기다림'을 번역하는 데 처참하게 실패했을 뿐이었다.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벽난로의 장작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쓰러졌다. 산장의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마지막 남은 장작 몇 개를 벽난로에 집어넣었다. 불길이 다시 살아나며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서윤이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그녀의 습관적인 동작. 손바닥으로 서리를 문지른다.
"이누이트들은 이런 기다림을 표현하는 단어를 가지고 있어."
그녀가 차가운 유리에 손을 댄 채 중얼거렸다. 언어학자로서의 직업병, 혹은 이 극한의 상황을 학문적인 냉철함으로 이겨내려는 처절한 시도였다.
"이누이트어......?"
"응. 지구상에서 가장 춥고 황량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단어. '익추아르포크(Iktsuarpok)'."
나는 그녀의 입술에서 새어 나온 그 기묘하고 쓸쓸한 단어의 온도와 질감을 가만히 음미해 보았다. 낯설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슬픔이 배어있는 소리였다.
"무슨 뜻인데?"
"......누군가 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밖을 내다보는 애절한 몸짓."
그녀가 투명해진 창문 구멍으로 다시 끝없는 설원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그 멸종된 단어가 품고 있는 '애타는 기다림' 그 자체처럼 들렸다.
"그냥 '기다림'이 아니야. 그 안에는 초조함, 불안, 그리고 그 무엇보다 '누군가 나를 찾아오고 있다는 얄팍한 희망'을 버리지 못해 계속해서 행동하게 만드는 그 지독하고 처절한 마음이 담겨있어. 안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엔 너무 두렵고, 밖으로 나가 찾기엔 너무 미약한... 그 어중간하고 고통스러운 상태."
서윤의 해석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혔다. 그것은 단순히 창밖을 내다보는 서윤의 습관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3년 동안, 그리고 어쩌면 연애를 하던 그 시간 내내 내가 그녀에게 강요해 온 '기다림'의 본질에 대한 해부였다. 나는 늘 그녀를 내 원고 마감 뒤에, 내 내성적인 침묵 뒤에, 내 자존심 뒤에 세워두고 기다리게 했다. 그녀는 늘 그 어중간하고 고통스러운 '익추아르포크'의 상태에서 나라는 불확실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마음의 창문을 닦아내고 또 닦아냈을 것이다.
"난... 네가 날 잡지 않아서, 날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어. 그래서 존중해서 보내주는 게 사랑이라는 네 비겁한 핑계가 더 미웠어.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다고 소리라도 질러줬으면, 그렇게 애타게 익추아르포크하지는 않았을 텐데."
전에 그녀가 쏟아냈던 그 고백이 다시 환청처럼 들려왔다. 우리는 사랑 부족이 아니라, 번역 실패였다. 내가 '존중'이라고 포장했던 침묵은 그녀에게 '방치'였고, 그녀가 '기다림'으로 버텼던 시간은 나에게 '떠나고 싶어 하는 신호'였다.
"......미안해."
내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나왔다. 사과조차 나는 늘 늦었다. 3년 전, 햇살이 부서지던 거실에서 내가 끝내 오역하고 말았던 바로 그 간절한 눈빛 앞에, 나는 다시금 퇴로를 뚫지 못한 바보처럼 서 있었다.
서윤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녀의 짙은 눈동자가 잔뜩 붉어져 있었다. 뺨 위로 투명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져 얼어붙은 창틀 위로 흘러내렸다. 그것은 마치 길고 길었던 빙하기가 끝나고, 티에라델푸에고의 거대한 만년설이 비로소 녹아내리며 봄을 알리는 경이로운 파열음처럼 들렸다.
"아니야. 사과하지 마. 우리는 그저 각자의 시계를 차고 서로 다른 기다림의 방식을 고집했을 뿐이야. 나는 카페 문만 바라봤고, 너는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봤잖아. 그 방식이 달랐을 뿐, 서로를 간절히 원했다는 비극적인 오독(誤讀)...... 우리는 침묵에 유창했지만, 마음에는 지독한 문맹이었던 바보들이었잖아."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지 않은 채, 창가 자리를 떠나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소파에 앉은 내 굳어버린 다리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손을 맞잡아왔다. 3년 만이었다. 입안에서 점액처럼 맴돌기만 하던 그 투박한 진심들이,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온 것은.
"단어는 입 밖으로 뱉어지는 순간 살아나. 방금 우리가 3년 묵은 침묵을 깨고, 투박하지만 살아있는 우리의 언어로 서로를 번역해 낸 것처럼 말이야."
4화에서 내가 펜을 꺼내 수첩에 적었던 그 문장. 그것은 단순히 크리스티나 할머니의 멸종된 언어를 위한 애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부패해 가는 내 마음을 구하기 위한, 세상에서 가장 투박하고 촌스러운 고백이었다.
우리는 낡은 수첩을 꺼내 수천 개의 단어 뒤에 숨어 비겁하게 살아온 지난 3년의 죗값을 치르듯, 적힌 글을 지우고 옆에 우리만의 새로운 해석을 덧붙여 적었었다. 수사여구도, 세련된 은유도, 문학적인 은폐도 없는 날것의 문장.
서로 원하면서도 눈치만 보는 답답하고 지겹고 폭력적인 침묵의 늪.
용기를 내기 바로 직전,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찬란했던 마지막 망설임의 순간.
서윤은 내가 수첩에 쓴 그 삐뚤빼뚤한 문장들을 들여다보더니, 아직 젖은 눈으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었다. 창백하게 언 뺨 위로 옅지만 따뜻한 복숭아빛 생기가 돌았었다.
"작가님 문장력, 아직 안 죽었네. 이 투박하고 촌스러운 정의라니."
"그럼 이 사전, 계속 집필해야 할 텐데. 앞으로 계속 도와줄래?"
다시 연애하자는 말이기도 했고, 이 비릿하고 차가운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될 우리의 길고 긴 여행을 함께하자는, 세상에서 가장 투박하고 진심 어린 프러포즈였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래. 세상에 사라져 가는 말들이 너무 많아. 혼자 듣기엔 너무 벅차니까."
하지만 지금, 이 안데스 산맥의 낡은 산장은 오로라도, 축복하는 폭죽도 없었다. 오직 압도적인 백색 소음과, 바닥을 드러낸 식량, 그리고 체온조차 나누기 버거운 극한의 추위만이 존재했다.
벽난로의 마지막 장작이 쓰러졌다. 산장의 공기가 비릿하게 식어갔다. 우리는 할머니의 무덤가를 뒤로하고 천천히 걸어 내려왔던 그 희망차고 찬란했던 시작을, 이 차갑고 황량한 고립 속에서 다시금 시험받고 있었다.
"서윤아, 주머니에 손 수건... 좀 빌려줘."
내 목소리는 사흘간의 침묵과, 극한의 추위와,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게 닿지 못한 그 절박한 마음 탓에 형편없이 떨려 나왔다.
서윤은 카디건 주머니에서 붉게 터진 손으로 손수건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녀의 손등에 난 상처가, 그녀가 매일 창밖을 내다보며 했던 그 지독하고 처절한 '익추아르포크'의 죗값처럼 느껴져 폐부가 시려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내 굳어버린 다리를 움직여 걸음을 뗐다. 처음에는 느린 걸음이었으나, 이내 주방 쪽으로 향했다. 비겁하게 숨는 뜀박질이 아니었다.
타닥, 타닥, 콰직.
얼어붙은 주방 바닥을 짓밟는 구두 소리가 엄숙한 산장의 정적을 무례하게 깨뜨렸다.
"작가님, 어디 가요?"
서윤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번역가님 자문이 좀 필요한데. 우리... 남은 밀가루 조금이랑, 옥수수알 몇 개로 수프라도 좀 끓여볼까?"
나는 주방 선반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3년 전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바닐라 빈 몇 개를 꺼내 보였다.
퇴로를 완전히 끊어버린 내 입술에서, 지난 3년간 나를 갉아먹었던 앙상하고 투박한 진심들이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수사여구도, 세련된 은유도, 문학적인 은폐도 없는 날것의 문장. 번역조차 필요 없는, 세상에서 가장 투박하고 촌스러운 고백이었다.
서윤이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이 속절없이 무너지며, 춤추던 폭죽 대신 티에라델푸에고의 거대한 만년설이 비로소 녹아내리며 봄을 알리는 경이로운 파열음처럼, 낡은 수첩을 꺼내 멸종된 언어 사전의 다음 페이지를 펴고 새로운 단어를 기입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다음 페이지에는 어떤 멸종위기 언어가, 또 어떤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창밖의 얼어붙은 백색 세상보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된 사전의 다음 페이지가, 사라져 가는 말들의 안부가, 더 벅차고 뜨겁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