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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중지추 Nov 14. 2023

애도의 시간

‘결핍이 지탱해주는 관계’ 에 익숙해 진다는 것 2 (5)

   

 어렵게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새로운 교복과 가방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이웃집에 가서  졸업한 언니의 교복과 가방을 얻어왔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언니다. 별로 사용한 흔적은 없었다. 상관이 없었다. 새것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다.  어머니는 그 옷을 입고, 그 가방을  들고 다니는 나를 말을 잘 듣는 딸이라고 오며 가며 가끔씩 칭찬했다. 

 최근에 혜화동에서  ‘수상한 흥신소’란 연극을 봤다.  저승으로 아직 가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사이에서 떠도는 다양한 영혼들이 수상한 흥신소에 와서 고민  해결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연’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남이 입던 교복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스스로) 당하고 

엄마에게 교복을 내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 때의 딸의 마음에 아파하며 

미안하다고 한다.  바로 나의 고등학교 시정의  옆집 언니의 가방과 교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나에게는 무엇으로 남아있나?

 당시 우리는 다들 가난했다로 치부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여고생쯤 되면 외모나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나이이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죽음을 사색하는 아이였으므로, 그 이하의 고통은 의미가 없었다. 현재의 고민을  잊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저기 높은 하늘, 우주의 나이,  광대한 우주의 크기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 지구가 속한 은하의 지름이 10만 광년이고,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는  안드로메다까지 빛의 속도로  250 광년이랜다. 말이 10만 광년이지 빛이 10만년 가는 거리다. 인간의 삶은 10만 광년 에 빗대면 그 존재가 없다고 봐야한다. 지구의 나이가 4천 5백만년이인데 , 인간은 잘해봐야 100년 정도 산다쯤 되면 이제 감이 온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걸. 지금껏 지구 상에 살았던 모든 인간은 다  죽었다 까지 가면  나의 고민은 티끌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나에게 교복이나 가방 혹은 중학교 때 맞은 기억은 그런 류로 치부 되었다. 그런건 의미없는 것. 본질이 아닌 것이고  중요한 것은 생과 사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다로 귀결되었다. 

  나의 공부방은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내 방이 번듯이 있었지만 집이 어려워지면서 방 한 칸이라도 세를 놓아야 되는 형편이었다. 자연스럽게 내 방을 비워야 했다.  나는 창고를 급조하여 벽지를 바른 방으로 가게 되었다.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습기가 많았다. 몸도 가렵고 머리가 많이 아팠다. 친구가 와서 보고 냄새가 심하다고 코를 찡그린 덕에 어머니에게 힘들다고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이번엔 부엌에 딸린 식사하는 방의 한 귀퉁이에 책상을 놓을 수 있었다. 식구들이 식사를 하고 부엌을 오고가는 한 켠에 나의 책상이 있었다. 거기가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다. 더 좋은 것을 알지도 못하고, 더 나은 상황에 있어본 적도 없어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책에 집중하는 순간 다른 건 다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행히도 그때가 고 3이라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적어서 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곰팡이 냄새가 나는 창고 같던 그 방은 다시 방수처리를 하고 월세를 냈다. 어머니는 나를 칭찬했다.  내 덕에 방 한칸을 더 세낼 수 있게 됐다고. 

 시니컬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불꽃처럼 살다 간 전혜린을 빼곤 설명할 수가 없다. 그녀는 집은 유복했으나 자신의 감성은 존중받지 못했다. 결혼은 강요당했고 삶에 대한 열망은 강했다. 이루지 못한 감성과 열망은 죽음에의 욕구로 이어졌다.  ‘모든 평범한 것 사소한 것 , 게으른 것, 목적 없는 것, 무기력한 것, 비굴한 것을 나는 증오한다. 자기 성장에 대해 아무 자고도 지출하지 않는 나무를 나는 증오한다. 나는 경멸한다.’라는 글을 읽으며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로워 한,  불꽃 같은 짧은 그녀의 삶을 아파했다. 

동경했다. 그녀의 가녀린 감성을. 내 책상 위엔 그녀의 사진이 걸렸다. 비범하게 살기를 원했고 끝없이 성장하기를 갈망하고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깨우치겠다는 마음으로 독서모임을 주도했다. 친구들 중 독서에 관심이 많은 2명을 모았다. 각 자 남학생 1명 씩 데려 오기로 했다.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학교 주도의 아카데미라는 연합동아리에 가입해 있었는데  남학생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독서토론도 하고 시국 강연도 들으면 리더십을 배웠다. 자연스럽게 남학생들의 사고 방식이 나와 다르고, 이성적인 라는  점을 간파하게 되었다. 독서모임은 이상의 ‘날개’를 시작으로 해서 1년이나 이어졌다. ‘남편’의 존재가 실제 남편이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꺽인 꿈 같은거라는 걸 그 때 우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방향타를 놓치지 않고 1년 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 나이의 아이들 만큼 치열했고, 열심히도 살았다. 여자 친구들은 모두 전혜린을 동경했고 그만큼 열심히 독서를 했다. 에겐 독서가 가장 중 중요한 관심사였는데,  6명 중 어떤 친구는 그 안에서  연애를 했고, 실연에 아파했고 어떤 친구들은 결혼도 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은 대학에서 만났다.  전혜린의 감수성은 사춘기 소년 소녀의 마음에 적합도가 높았지만 그녀의 삶을 그대로 따라할 만큼 우린 어리석지 않았다. 다만 죽음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을 뿐이다. 죽음이라는 상태인 그녀가 동생과 동일시 되기도 했다. 그녀를 통해 커피를 알게 되었다. 커피를 정말 많이 마셨고 밤도 많이 샜다. 밤에도 생생하게 의식이 살아있음을 느끼며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전혜린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 어머니는 말도 없이 그 사진을 없애버렸다.  버렸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거나 또는 어쩔수가 없다는 식의 무기력 같은 감정이 아니라 상관이 없었다. 버리든 말든.사진이라는 현상이 없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라는 마음으로 그냥 살았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의 역설을 말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오히려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 끝이 없이 삶이 무한하다면 무엇이 그리 소중하겠는가.

유한하고, 일회적이고, 비가역적이기에 우린 열심히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같다. 나의 결핍의 시절을 함께한 동생의 죽음에 대한 묵상과 집요함이 없었다면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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