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의 억압- 보편성과 폐쇄성
피해의식은 우리 모두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숨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신의 피해의식을 겉으로 드러내어 보이기를 꺼려하고, 다른 사람의 피해의식을 굳이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어느 정도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에게 다 있지만 겉으로 꺼내어 담론화하기를 꺼려하는 대상이 바로 사회적 금기어가 된다. 성이나 배성이란 단어처럼 말이다. 피해의식도 그런면에서 사회적 금기어다.
자신의 행동이 원인이 피해의식임을 공포하는 순간 어떤 해명도 필요가 없어진다. 듣는 사람도 더 이상의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냥 피해의식에 쩐 사람으로 규정될 뿐이다. 또 '너 그거 피해의식이야'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내밀한 비밀 따위를 상대방에게 들킨 느낌이 든다. 내 마음을 알아줬다고 해서 반가운 것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을 침범당한 불쾌감에 휩싸인다.
피해의식은 자기방어다.
피해의식은 자기 안의 오래된 상처다. 회복되지 못하고 딱지 앉은 모양새다. 아니 딱지가 아직도 생기기 않아 시퍼런 상처가 그냥 노출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니 상처를 건드리면 당연히 아플수밖에 없다. 인간은 고통을 싫어하기에 상처로 인해 고통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의 방어막을 펼치는 것이다. 그래서 피해의식은 자기 방어 의식이다. 방어의 형태가 적극적으로 외부에 대한 분노, 공격, 불쾌감으로 표현이 된다. 또는 소극적 형태로는 무기력, 우울, 불안 등으로 표현된다. 적극적으로 외부로 표현되는 경우는 그나마 주위 사람들이 알아채기도 한다. 소극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자기 안에 꽁꽁 감싸안은 상태이기에 더 곪을 수 밖에 없다.
피해의식은 보편적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유사이래 4대 성인인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 석가모니 포함하여 다 상처 투성이 이다. 마음의 상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니 피해의식도 보편적이다. 보편적인 피해의식을 대하는 태도는 자신의 피해의식을 대하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피해의식으로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을 따스한 방식으로 보고 치유하려는 사람은 가능한 다른 사람의 피해의식에 대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자신의 피해의식에 냉담하고, 애써 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피해의식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자신 안의 피해의식을 따뜻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어린시절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생긴 피해의식에 힘들어하는 내면의 아이를 안아줄 일이다.
피해자의식과 피해의식은 다르다.
피해자의식은 실제로 경험한 사실이다. 팩트이다.
피해의식은 그로 부터 생긴 감정이다. 기억이다.
피해 사실과 피해의식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피해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생긴 피해의식은 바꿀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희미해 지기도 한다. 더러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윤색되기도 한다. 나이드신 분들이 어린시절이 온통 아름다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피해의식에 대한 감수성 키우기
인권감수성,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피해의식 감수성도 키워야 한다.
보편적인 것에 대한 은폐를 넘어 자신의 피해의식과 타인의 피해의식을 인지하고
그 사람을 인정하고 바라볼 일이다. 일관된 따뜻함으로 말이다. 더러는 따뜻한 무관심으로 말이다. 아는 것이 상대방을 도와주는 일이라면 알아서 도와주어야 할 것이고, 모른체 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면 우리는 또한 무관심의 방법으로 도와주어야 할것이다. 아는 것만이, 아는 체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도와주는 것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도와주는 예의가 필요하다.
피해의식을 치유하는 힘은 사랑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피해자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거나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게 아니다. 너 혼자 일어서라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상처를 딛고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의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는 말이다. 너의 상처는 나의 사랑을 디딤돌 삼아 회복되면 좋겠다. 그의 상처는 또 누군가의 사랑의 힘을 디딤돌 삼아 일어서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서로가 상처와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