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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을 함께한 남자친구가 없어졌다.

불안하고 즐거운 나의 서른기

by 나무 수

2025년이다. 한국나이로 서른이 된다. 왠지 올 해는 새로운 변화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큰 변화가 생겼다. 남자친구가 없어졌다.


나는 올해부로 8년을 꽉 채우고도 며칠을 더 만났던 오빠와 헤어졌다. 장기연애는 웃기게도 이별까지 뜨겁지 않았다. 우리는 헤어지기로 한 날 평소와 같이 만나 밥을 먹었고,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했다. 이날은 대화를 평소보다 더 오래. 그리고 많이 나눴다. 오빠에게 집중하며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낯설었다. 진작 이렇게 많이 대화하고 서로에게 집중해 볼 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오빠와 헤어지고 싶었다.


오빠를 만나며 나는 이상 갈증이 자꾸 겼다. 그 갈증의 시작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오래 오래 지속된 갈증이 허기가 되다. 결국 있는 그대로 오빠를 사랑해 줄 수 없어서 그 옆자리를 비워주기로 결정했다.

만나는동안 우리는 잘 지냈다. 바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무조건 만났으며, 어딜가도 항상 손을 잡고 다녔고, 매일 아침 눈을 떠서와 자기 전 인사 나눴다. 헤어지고 나서도 나의 집 비밀번호는 그이고, 너무 많은 사진들을 차마 정리할 엄두가 안나 그냥 두었다. 일상 속 모든 것들에 함께 했던 흔적이 가득하지만 오히려 너무 익숙한 일들이라 큰 의미가 없다. 내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기에 그냥 두었다.


오빠를 만나기 전 20대 초반의 나에대해 생각했다. 짧은 연애만 겪어본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필연적으로 오는 이별에 대한 생각때문에 관계를 시작하기가 무서웠다. 그런 나에게 오빠는 말했다.


"나는 너랑 헤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


나는 그 말이 너무 듬직해서 오빠를 사귀어보기로 했다. 언젠간 나도 그런 확신을 가져보고 싶다고 느꼈다. 오빠는 그 말을 끝까지 지켰다. 사귀는 내내 나랑 헤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서로의 길을 걷자고 운을 띄우지 않았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만났고 있을 것이다. 관계가 불안했던 나는 오빠를 만나며 안정을 찾았다. 앞으로도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질 걱정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더 잘 사랑하고 싶어져서 이별을 결심했다.


장기연애 이별. 생각보다 별거없다. 그게 가장 슬프다. 오빠가 제 삶을 잘 살고 있는게 위안이 된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아 가끔씩 괜히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눈꼴시리지 않게 적당히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서른. 그를 떠나보냈다. 이제 내 갈증은 해소가 될까.

이제 친구들이 결혼을 하던데 나는 결혼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나를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이 많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그냥 더 좋은 사람이 되어보기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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