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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 Nov 17. 2023

사람마음에도 a/s기간이 있다

주변 마음 챙기기

문득 올해를 마무리하며 주변 사람들과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주제를 떠올려보았다.

친구들은 대체로 고민이 많고 마음이 아팠다.

진로, 가족, 결혼 그리고 자신의 문제까지 수백 가지 고민들을 토해내었다.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나는 편지를 쓰고 싶었다.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

그리고 나에게도.


어렸을 적 나는 엄마에게 편지를 많이 받았다. 편지지뿐만 아니라 카페 냅킨 위에도 편지를 적어주었다.

응원이라는 것은 냅킨 위에 삐뚤대는 글자로 적어낸 편지처럼 서툴지만 감동이 되는 무언가가 아닐까.


나는 편지를 쓰고 싶다.

그리고 편지에 답장도 받고 싶다.


우리는 너무 바빠서 자기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조차 잘 모르는 것 같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내가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은


"고민 있어?"

"얘기해 보자"


문득 내 질문들이 불편했으려나 생각이 들었다.

해결되지 않을 고민과 걱정들을 파헤쳐버렸던 것은 아닌지.. 눈치 없는 질문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아니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들을 모두 들어주고 싶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면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대를 신뢰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마음의 문이 닫힐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며 간간이 들려오는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

문이 활짝 열려 웃는 얼굴로 나를 환영하지 않아도 좋다.

문 건너편, 잘 지내고 있는지 괜찮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좋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상한 이타심 같은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오늘은 진로와 결혼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것도 아직 결정하고 싶지 않은데, 점점 다가오는 현실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야기하는 내내 주어가 "그 사람은"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자신이 힘들다는 이야기인데 왜 자꾸 그 사람을 신경 쓰는 걸까.

나는 그 사람의 상황과 생각을 듣고 싶은 게 아닌데, 친구는 계속 그 사람의 이야기처럼 말했다.

그래서 모든 결정의 순간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물어보았다.

뭐가 이상하냐는 표정으로 그렇단다.


나는 당연하게 내뱉은 대답 너머의 그녀를 보았다.

입시부터 취준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그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익숙하면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묻는 것은 어색한.

한국사회에서 착한 딸로 자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만들어지는 모습이다.


나는 결정하는 방식을 바꿔보자고 최대한 간결하게 말했다.

가슴에 맺힌 말이 많았다.

얼마나 힘들었어..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지 않냐며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난 이 방법이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간단한 솔루션을 주는 것. 혹은 가볍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내가 그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옷도 한 가지 스타일로만 입지 않듯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로 만들어보는 것을 제안했다.

지금까지는 그 과정이 단순하고 빨랐다면, 이번에는 빙빙 돌아 귀찮아질 만큼 여러 번 고민해 보자고.

인생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언제든지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흔들리니까.


결정의 끝은 항상 "A 아니면 B"라는 단순한 결론으로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결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사람은 어떤 식으로 결정하는지 배워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누군가는 남의 생각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골방에 틀어박혀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건 그 사람의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고 내 기준을 만들어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결정도 어떤 과정으로 하는지에 따라 부담이 될 수도 있고, 행복한 고민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래. 생각해 보면 죽을 듯이 고민했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어떤 결정을 해도, 어떤 결과가 나와도 괜찮았을 텐데 죽을 것만 같던 그 기분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지겹도록 고독을 즐기면서도 사람이 필요했다.

같이 자전거를 타 줄 사람. 밤새 수다를 떨어줄 사람. 술을 같이 마셔줄 사람. 옆에서 같이 뛰어줄 사람.

내 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찾지 않았을 뿐.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그제야 좋은 사람들이 보였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었던 좋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에도 a/s기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 한다.

a/s 보장기간이 1년인 가전제품보다 더 귀한 우리의 마음들이 치유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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