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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 Nov 24. 2023

인도네시아 기차 안에서 회사에서 잘린 친구를 만나다

인도네시아 여행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반둥이라는 마을로 가는 기차 안이었다. 출출하지 않냐는 말에 뭘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답했고, 애니는 나를 데리고 기차칸을 겹겹이 지나 음식냄새가 풍겨오는 공간으로 데려갔다. 기차 안의 식당이라니!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모습을 보았고, 나는 왜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곳에서 그리움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모른다.

 

두리번거리며 빈자리를 찾았지만 똑같은 사람들만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결국 배고픔에 지고 나서야 용기 내어 인도네시아 남자 둘이 앉아있는 자리에 함께 앉았다. 합석문화가 그리 어색하지 않은 나라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렇게 벨리퉁 사랑해요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이상한 한국 사람과 인도네시아 사람 3명이서 마주 보고 컵라면을 먹었다. 후루룩 거리는 소리가 잠잠해질 쯤에 내 친구 애니가 낯선 남자들에게 행선지를 물었다.

 

"너희도 반둥 가?"

 

퇴근하자마자 반둥행 기차를 타서 너무 피곤하다던 무함마드 보이. 남자 둘은 같은 회사의 직장동료로, 한 명은 개발자와 한 명은 운영자였다. 여기에도 한국과 똑같이 회사원이 있는 게 이상하게 낯설었다. 3박 4일 휴가를 내어 놀러 가는 지금이 그들에게 꽤나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이 넓은 세상 같은 하늘 아래 회사원들 정말 많겠다.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더듬거리며 따라 하는 인도네시아어가 우스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빵빵 터지는 이 남자들 때문에 외국에서까지 괜한 개그욕심이 생겼을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인도네시아어로 3명이 진지한 대화도 오고 갔다. 애니는 조심스럽게 자기 옆에 앉은 개발자 친구가 직장에서 잘렸다는 말을 해줬다. 물론 중국어로 못 알아듣게. 나는 애써 모른 척했지만 이미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안타까움이 많이 묻어났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한국이 아니면 살기 참 편할 것이라고 단정 지었을 때가 있었다. 어떤 나라는 영원히 잘리지 않는 직장이 있을 것만 같았고, 꼰대 같은 직장상사들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인도네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가는 기차 안에서 기차 이음새같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왜 생겼었지? 왜 더 좋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지? 그 단호했던 마음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음의 문제였을까. 책임져야 하는 이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을까? 아니면 사회적 시선에 무릎 꿇고 죄지은 사람처럼 눈치 보며 살아가는 내 모습이 싫었을까?

 

나는 외국어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영어공부를 했고, 중국어도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꼭 자유롭게 구사하고 싶었다. 욕심보다는 간절함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외국어를 쓰면 나의 원래 모습도 성격도 꼭 똑같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해방감이 있었다. 눈치 보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때로는 직설적인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겼다. 나는 내 모습을 아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나 보다.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외국살이가 다르게 보였다. 나는 내가 있는 공간이 바뀌면 나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단편적으로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인도네시아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해 보이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는데, 여기 기차 안에는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 실업자가 있었다. 결국 어디든지 똑같다. 만약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내 마음의 문제일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며 기차에서 내렸고 많은 사람들이 기차 플랫폼 출구를 찾아 나갔다. 나가는 길은 하나였다. 같은 길을 걸어가면서 음악을 듣는 사람, 사랑하는 이와 대화하는 사람, 허공을 응시하며 멍하니 걷는 사람 그리고 낯선 여행객의 걸음까지. 모든 걸음이 소중하게 보였다. 내가 사는 국가의 문제가 아니구나. 같은 곳에 살더라도 같은 길을 가더라도 나는 내 마음이 이야기하는 대로 그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지금 열심히 걷고 있다. 내 옆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르게 걷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으면 나도 불안하다. 내 걸음이 너무 느리게 느껴지고 답답하다. 흥얼거리며 걷는 사람들 옆에 있으면 나도 흥이 오른다. 신이 난다. 나는 너무 급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로운 그리고 행복한 걸음을 가진 사람들과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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