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나무 꼭대기에, 생각 없이 슬리퍼를 신은 발치에 싸늘하게 불어온다. 그리고 필자의 지갑에도.
다가오는 10월 6일엔 카네기 홀이 코로나 이후 다시 문을 연다. 유자 왕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교향곡 5번을 하고, 오프닝 갈라의 마무리는 번스타인의 캉디드 서곡이다. 뉴욕이라면 상징적인 곡이니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시국이 시국이다보니 강인함이 느껴지는 선곡이라면 좀 지나친 생각인가.
카네기 홀의 올 시즌 프로그램은 정말로 화려하다. 피아니스트만 해도 연말까지 유자 왕, 랑 랑, 트리포노프가 올라오고, Sō Percussion의 공연도 잡혀있다. 그러나 내년의 면면은 더욱 화려한데, 딱 피아니스트만 놓고 보더라도 마추예프, 브론프만, 액스, 우치다, 쉬프, 유자 왕, 키신이 온다.
사실 이 중 다수는 2020년 코로나 락다운 이전에 베토벤 출생 250주년을 맞아 기획된, "올 베토벤" 프로그램의 멤버들이다. 저 프로그램이 통째로 날아갔으니 (필자는 락다운 직전, 운 좋게 가디너 옹의 베토벤 3번 교향곡을 들을 수 있었지만), 뉴욕 소재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들은 땅을 칠 만한 일이었는데, 카네기 홀은 리오프닝 시즌에 더욱 강하게 돌아왔다.
필자가 가장 기대하는 공연은 내년 2월 26일, 지휘자 게르기예프와 빈 필하모닉이 협연하는, 림스키-코르자코프의 "세헤라자데"다. 티켓도 이미 샀다. 지난 달, 티켓 세일이 열리자마자 가장 싼 발코니 자리를, 다리를 다 넣기 힘든 협소한 자리라는 경고와 함께 $48에. 무덥던 지난 여름날, 지갑에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시간과 돈만 된다면 셋 다 가고 싶지만, 뉴저지 깊은 곳에 살며 입에 풀칠이나 하는 필자는 결국 하나를 골라야 했다. "세헤라자데"를 고른 이유라면, 단순히 라이브로 들어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기 때문.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문외한이라면 쉬이 그렇게도 되겠지만, 필자의 클래식 취향도 피아노나 교향곡에 편향됐었다. 그걸 무참하게 깨부순 것이 대학교 때 교양과목에서 들었던 베토벤의 후기 현악 콰르텟들, 특히 "대 푸가"였다. 입이 떡 벌어져서는, "정말로 현악기 4개로 이런 소리들이 다 난다고?" 자문했던 기억이 있다. 비슷하게, 쇤베르크의 "Verklärte Nacht"를 처음 들었을 땐 당연히 교향곡인 줄 알았다.
그러다 "세헤라자데"를 찾아들었다. 우리는 토마스 비첨과 로얄 필하모닉의 연주로 만났다. 1악장부터 눈을 감게 한다. 어디가 관악기고 어디가 현악기인지 분간이 가질 않고, 갖가지 색채와 음이 파도처럼 들고 나다가, 잠시 후엔 이국적인 멜로디가 들어온다. 멜로디는 다시 파도를 만나고, 음악은 항해가 된다. 그래서 1악장의 제목을 찾아보면, 다름 아닌 "바다와 신밧드의 배"였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 소설"이란 표현을 떠올렸다. 감각적이기까지 한 간접경험, 한 인간이 그 자신보다 큰 세계를 실감하는 감동,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그저 벅차오를 뿐인 감정.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기록하는 음악과, 그것을 연주하는 음악가들. 1악장부터, 나는 세헤라자데를 좋아하게 됐다. 응당 라이브로 듣는 게 평생 소원이 되었다. 이걸 생음악으로 듣게 되면, 도대체 얼마나 더 선명하게 내 앞에 내 안에 이런 소리들이 나타나는 걸까 하고.
그러나 나는 3악장을 들으며 가장 많이 울었다. 벽이 얇았던 학창시절, 한숨 쉬는 밥솥, 경련하는 실내등과 그림자, 불안한 창틀, 삿된 한기, 재채기, 밤이 지나가는 소리, 초침이 나를 세는 소리, 그리고 운율 없는 타자기 소리가 내 안에 묵직하게 가라앉으면, 나는 이어폰을 꼽고 세헤라자데를 틀었다. 1악장부터, 버거운 2악장을 지나, 3악장의 첫 2~3분을 기다렸다. 어째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 악장에 클라리넷 소리를 이렇게 많이 넣었을까. 마치 고요한 밤, 아무도 내 머릿속에 말 걸어주지 않는 밤이면 이 악장을 들으라고 하는 것처럼. 악장이 뒤로 가면서, 나는 다시 용기를 얻었다. 많진 않지만, 곡을 끝까지 다 들을 수 있는 용기를. 우리 삶엔 가끔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세헤라자데 싱어롱이 가능할 정도로 들었지만, 아직도 들을 때마다 울컥울컥하곤 한다. 그럼 내년 2월 26일엔 나는 어떤 얼굴로 3악장을 듣고 있을까. 누구랑 자리를 붙여서 가지 않기로 한 것이 참 다행이다. 그 날엔 또 어떤 용기를 얻어 공연장을 나서게 될지, 그 때 내 인생은, 또 음악이 보여주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나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공연 정보를 쓰려다 개인사를 떠들어 조금 부끄럽게 되었다. 그러니 황급히 글을 마무리하길: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어떤 곡을 끝까지 다 들을 수 있는 용기든, 그런 용기를 주는 부분을 2~3분으로 끝내버리는 용기든, 아니면 요즘 시국에 캉디드 서곡으로 오프닝을 하면서 카네기 홀이 전하려는 그런 용기든, 하여간 아무런 용기라도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조만간 있었음 좋겠다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