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계절을 바꾸느라 부산하다. 봄에는 박물관, 갤러리들이 열었다. 여름에는 재즈와 EDM 공연장들이 문을 열었다. 이제 가을이다. 클래식 공연들이 문을 연다.
지난 해, 모두가 집과 제 안에 갇혀 살던 때, 카네기 홀에서 전화가 왔다. 기부 좀 해주십사고. 이런 저런 혜택들을 늘어놓길래, 됐고 나는 당신들 공연을 좋아했으니 기부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고마워했다. 클래식 공연들이 다시 문을 여는 올해로, 그 혜택들은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로부터 무언가를 배운 곳도 있으니, 그것은 Upper West Side에 있는 92nd Street Y라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다. 나도 JACK quartet의 공연을 보러 딱 한번 간 적이 있다. 당시엔 공사중이었는지, 구글링하면 나오는 Buttenwieser 홀과는 생김새가 달랐다. 극장, 색 바랜 무대장식, 의자를 모두 없앤 카펫 바닥에, 3층짜리 간이 플랫폼과 접이식 의자만을 두었던, 무척이나 고요하고 아름다웠던 곳.
아무튼 92Y는 눈물나게 고마운 곳이었다. 고르고 고른 음악을, 적은 수의 관객 앞에서, 싸게 공연해준다. 그리고 92Y는 앞으로도 고마울 예정이다. 다가오는 시즌 모든 공연은 온라인 스트리밍도 한다. 본 공연 티켓의 반 값에. 벌써부터 필자의 지갑이 연중무휴로 털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92Y의 시즌 공연 중 12월에 Marc-André Hamelin의 공연이 있다. 자주 오시는데, 이번엔 C.P.E. 바흐도 하신다. 대학교 때 교양 클래식 수업에서 C.P.E. 바흐를 좀 각 잡고 들었었는데, 학우들이 '얼른 모짜르트나 베토벤으로 넘어가자'고 투정했던 즐거운 기억이 있다. 그럼 정보 전달은 여기까지.
음악을 책으로 배운 탓인지 (물론 이제는 다 까먹었지만) 아믈랭, 굴다의 피아노 소리나 가디너의 오케스트라가 기억에 잘 남았다. 밤의 어둠, 고요한 산책로, 인적 없는 주차장에 부는 바람, 익숙한 많은 것들로부터 내가 떠올리는 소리라면 보통은 그런 것들이다.
요즘은 어물쩡 브람스가 좋아지고 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그러면 내가 좋아했던 것들, 나와 함께 했던 것들,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것들이 아믈랭의 피아노 소리처럼 눈 앞에서 서로 부딪히고, 얽어지고, 풀어지고 읽히면서 하나의 테마와 그 변주로 나타난다. 내가 생각을 멈춘 뒤에도 나를 존재하게 할 것들, 알고자 하는 기쁨과 인생이라는 수단. 의문 그 자체가 아닌, 의문을 던지는 자세. 영혼이 닮은 사람들, 우리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생명.
정처를 모르고 살아온 십수 년, 이제야 이해가 간다. 무언가를 남기고 이어가는 모습들에 내가 이끌리기는 당연한 일이었다. 음알못이 92Y의 커뮤니티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역시도 어쩌면... 그래서인지, 요즘은 무언가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을 보고, 들으면 (또 나눔 받으면) 나는 자꾸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