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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tober, 블루노트

by 김간목

나는 뉴욕 재즈 클럽들을 자주 찾지 않는다. 뮤지션들이 십수 년 인생을 갈아넣어 얻어낸 기교와 순간의 번뜩임인 만큼, 그런 것들에 집중하면 당연히 흥분되고 좋지만, 문제는 뉴욕엔 그런 훌륭한 재즈 뮤지션들을 호스트하는 재즈 클럽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뉴저지 깊숙한 데 사는 음알못 이 사람이 이런 곳에 리스팅 된 공연들을 가고 싶어서 미리 예습하다 보면, 다 좋은 것 같고... 뭘 가야 될지 모르겠고... 지갑 사정은 한정적이고... 그래서 결국 뉴욕까지 나갈 일 만들어 다녀오기를 포기하게 된다.


LA에 살 적에는 참 쉬웠다. 아무 날, 재즈 공연이 보고 싶을 땐 아무 생각 없이 블루웨일에 가면 되니까. 로컬 뮤지션들과, 하드밥에서부터 실험적인 시도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호스팅하는 아주 훌륭한 재즈 클럽이었다 (심지어 학생할인도 있었고!) 코로나 때문에 타격을 입고 닫게 됐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는데, 언제나 돌아가고 싶고 늘 그리운 곳이다.


https://youtu.be/1r6WSUlvQ20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LA 재즈의 빛과 소금, Blue Whale의 공연 모습.


얘기가 샜는데, 음알못이지만 필자는 욕심이 많다. 기껏 뉴욕(근처)까지 왔는데, 잘 몰라도 좋은 공연을 가고 싶다. 탐욕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핀트가 살짝 나간 결론이었다: 그냥 시간 맞을 때 블루노트를 가자. 블루노트는 오묘한 곳이다. 레이블은 1939년, 클럽은 81년에 오픈했다. 그래서인지 똑같이 정통 재즈를 호스팅하더라도 빌리지 뱅가드보단 젊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물론 윈튼 마살리스가 수장으로 있는 Dizzy's Club Coca Cola도 약간 다른 의미로 젊은 곳이지만...) 그리고 실험적이거나 팝에 걸쳐 있는 공연도 과감하게 호스팅한다.


이는 코로나 이후, 올 6월 블루노트 리오프닝의 첫 공연 2개가 누구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첫 날은 레이블의 대표 피아니스트인 Robert Glasper였는데, 두 번째 날엔 Jacob Collier였다. 사실, 블루노트 캘린더를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알 텐데, 가끔 공연은 셋, 호스트는 둘인 날이 있다. 그러면 으레 8시나 10시 반엔 정통 재즈나 빅네임들, 그리고 자정 무렵엔 팝/재즈/EDM/락에 걸쳐 있는 로컬 아티스트나 실험적인 시도를 호스팅한다. 지난 주엔 John Scofield가 공연했고, 이번 주엔 Cory Henry가 공연하고 있다. 약간의 분위기 차이가 느껴지는가?


https://youtu.be/O1VYpZ4m42Y

금년도 블루노트의 리오프닝 둘째 날을 맡았던 "Harmonizer" J. Collier 공연 1분짜리 티저(?).


https://youtu.be/mJR6XSSKi-g

원래는 이렇게 정신 없, 아니 참신하기 짝이 없는 아저씨다.


최근에 필자가 다녀온 공연은 드러머 Eric Harland와 피아니스트 BIGYUKI가 협연한 "Mixtape" 공연이었다. 음알못이 감히 평하긴 좀 그렇지만, "Mixtape"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키보드나 오토튠 등, 토막 토막 잘라놓은 음악적 요소들이 수시로 들고 나는, 대단히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뮤지션들의 기교 같은 건 말할 것도 없어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오만한 생각을 공연 시작 후 한 10분쯤 지나자마자 내버리고는 귀를 맡겨놓은 채 즐겁게 들을 뿐이었다. 아쉽게도 공연 영상은 필자의 핸드폰에만 15초 정도 두서 없는 클립이 있을 뿐이니, 언젠가 앨범이든 다른 베뉴에서 공연한 영상이든 올라오길 기다려보자.


사실 이 글은, 다가오는 10월에 있는 Robert Glasper residency, "Robtober"를 좀 알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다. 총 33일간 66개의 공연을 하는 이번 시리즈는, Robert Glasper라는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광범위한 음악적 장르들을 커버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Robtober 프로그램, 출처: Blue Note New York (bluenotejazz.com) 메인 화면


Ndegeocello, Terrace Martin과는 최근에 같이 작업한 앨범들이 있으니 참고하셔도 좋겠다. 하지만 몇몇 공연들은 최근에 내놓은 앨범도 없어서, 필자와 같은 음알못은 어떤 공연이 될지 도통 알기 힘들다. 그래도 Robert Glapser가 본인 이름 걸고 1달 동안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는 프로그램인데,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른 음악을 듣게 되더라도 즐거운 서프라이즈를 기대해봄직하다.


방문 팁이라면, 보통 공연이 저녁 8시나 10시 반이면, "Door Open"은 그보다 1~2시간 이르다. 자리는 테이블과 바 (bar seat) 자리가 있는데, 특정 테이블(고가)이 아니면 온 순서대로 앉게 된다. 때문에, 괜찮은 자리 앉으려거든 1시간쯤 일찍 가서 (즉 7시나 9시 반쯤 가서) 친구들이랑 뭐라도 시켜 드시면 편하게 볼 수 있다. 필자는 친구도 돈도 없어서 그냥 1시간 먼저 가서 바 테이블에 맥주 한 병 놓고 앉아 공부하기도 하는데, 시간 아까우면 그냥 늦게 도착해 서서 봐도 좋다. 공연이 길지도 않고, 음식이든 음료든, 아무래도 가격이 좀 쎄기도 하고... 대신 서서 볼 자리가 워낙 협소하니 제대로 안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염두하시길.


그럼 Happy Rob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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