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간목 Dec 28. 2022

벽과 벽을 맞대고


대학교 때 썼던, 캘리포니아의 햇빛과 계절 없음에 대해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부었던 글을 발견했다. 그 땐 거기 10년 살 줄은 몰랐겠지.


마찬가지로 대학교 때, 너희가 그곳을 사랑하기 전까지 학교는 너희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었다. 그 말이 응보처럼 돌아왔다. 학교를 나보다 먼저 사랑하고 만 이들은 학부만 마치고 떠났고, 남들보다 사랑이 조금 늦었던 나는 10년을 다 채우고 떠났다.


요즘 들어, 주변에 떠나는 사람들과 남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우리도 어느덧 그럴 나이가 되었다. 어디든 10년쯤 살면 집이 된다고, 잘난 듯한 생각을 대신 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뉴욕 같은 데서 사람이 어떻게 사냐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저주를 퍼붓고 있는 지금의 내게도 해당된다.


어제도 PATH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며, 자꾸만 멈춰서는 열차와 배려심이라곤 일절 없는 동승객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그러다 열차가 해저터널을 지날 때쯤, 문득 이 기차가 바닷속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차 한 칸 속 빽빽하게 늘어선 사람들이, 해조처럼 지하철에 붙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깜깜한 지하철 창에 불빛들이 덜컹거리며 지나갔고, 나는 그것들이 심해어의 불빛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면 내가 탄 열차 한 칸 속엔 제각기 다른 속도로 자라고, 또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조류들이 무수히 많았다. 


일순간 뉴욕의 야경이란 게 워낙 인간미가 없어서 뇌가 이런 그림을 만들어서 보여주나 싶었지만, 우미노 치카의 그림을 조금 닮은 그 광경을 나는 좋아했다. 사각형도, 원형도 아닌, 살아서 깜빡이는 불빛들.


어제는 푹 잤다. 이사 오고 며칠은 2시간 마다 깨곤 했는데, 이제는 새 집의 빛과 소음에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이유 없이 잠이 들지 못하는 것도 대개 예전과 같다. 피넛버터 젤리 샌드위치에 보충제를 탄 우유를 먹고, 포만감을 빌려 잠이 드는 것도 그렇다.


오늘부터 24-26 크리스마스 휴무를 마치고 뉴욕 공립 도서관들이 다시 연다. 나도 다시 도서관엘 갈 것이다. 대학교 입학 전, 시립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던 것이 기억났다. 그 때는 고등학교서 내다버린 3년을 메꾸겠다고 설치고 다녔었지. 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 샤니 빵이 프로틴바로 바꼈을 뿐.


살다 보면 낯설음에 놀라고 당황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게 되기도 한다. 남들이 스윗소로-한 향수병에 시달릴 때, 내 경우엔 그것이 증오로 표출되는데, 그게 무의미한 저항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러니 잘 부탁해, 뉴욕. 피차 성에 안 차겠지만 비비며 살아보자고. 잘 모르면서 일단 성질부터 내고 보는 것이, 그리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우리는 조금 닮았을지도 몰라.

keywor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