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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이야기 Mar 09. 2022

철학이야기 주간 뉴스레터 #8-2

대표에 대해 알아보자

오늘은 선거였습니다. 다들 투표는 잘하시고 오셨는지요? 대통령 선거는 여러 의미를 지닙니다. 권력의 큰 축 중 하나인 행정부의 대표이자 외교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을 뽑는 일입니다. 대통령은 대표를 뽑는 일인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대표가 정치 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대표되는 우리와 대표자인 그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거나 고민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대표가 한 행위에 대해서는 피대표자들 역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국회가 국민의 대표로서 동의한 외교 협약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의무를 부여하죠. 그리고 대표제는 우리 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치 체제 외에 학급, 동아리, 회사 같은 다른 단체에도 대표가 선출됩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우리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생활 곳곳에서 발견되는 대표들에 대해 한 번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대표는 피대표자의 분신인가?


대표와 피대표자의 관계를 생각해봅시다. 한 가지 떠올릴 수 있는 방식은 대표를 피대표자가 가지는 의지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겁니다. 대표는 이미 존재하는 피대표자의 의지를 단순히 복사해서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원래 피대표자는 모두 정치적으로 평등하고 각자의 의견이 결정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다만 집단이 커질수록 그 집단의 모두가 발언하는 것은 회의에서 비효율적이기에 집단의 의견을 반영할 대표를 선정하여서 의견을 대신 전달한다는 거죠. 

이 방식에서는 대표가 피대표자의 의견을 잘 전달하는지 감시하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우리들의 의견을 잘 전달하라고 대표를 뽑았는데 잘못된 의견 혹은 자의적인 의견을 내보이는 것은 잘못된 행위입니다. 그래서 피대표자는 대표에게 항의를 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그를 대표에서 내릴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것이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올 때가 된 홉스

하지만 이런 관계에 대한 몇몇 비판이 있습니다. 홉스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서 말씀드리자면, 집단이 가지는 의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집단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명의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있고, 그 의견들은 경쟁하고 분열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집단이 가지는 공통된 의지라는 건 모호한 개념이 됩니다. 하지만 대표가 말하는 것은 비교적 더 뚜렷합니다. 대표는 하나이기 때문에 분열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표가 집단을 대표해서 의견을 말함으로써 비로소 집단의 의지라는 게 생기는 겁니다. 즉 대표가 있어야 집단의 의지를 말할 수 있지, 대표 없이 집단의 의지를 논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하나의 비판점은 스스로 의견을 내세울 수 없는 사람들의 대표를 이야기하기에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동이나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은 스스로 의견을 내기에 무리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대표는 어떤 의견을 말해야 하는지 불명확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피대표자는 대표에게 항의하거나 자격을 박탈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어 보입니다. 


대표는 피대표자의 수탁자인가?


이건 수혜자-수탁자 관계로 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즉 대표는 수혜자인 피대표자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러면 위에서 말한 비판점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수탁자인 대표는 집단이 가지는 의지를 반영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홉스식 비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의지를 대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표를 세우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이 관계에서 대표는 단순히 의지를 대변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율성을 가집니다. 대표는 피대표자들 자신보다도 그들의 이익을 더 잘 아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피대표자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하기보다는 결정을 하고 나서 소명하는 경우가 더 많아집니다. 


누가 회사(수혜자)의 이익을 가장 잘 아는가?

누가 회사(수혜자)의 이익을 가장 잘 아는가? 하지만 아무리 피 대표자들의 이익을 잘 알고 있는 대표를 뽑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행동에 대해 항의를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항의 과정이 없다면, 그것은 단순히 피대표자에 대한 온정적 간섭주의에 불과할 것입니다. 다만 항의의 관점이 앞서 말한 대변자 관계와는 조금 달라집니다. 수혜자의 이익에 대해 항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회사의 대표인 CEO가 있다고 해봅시다. 회사는 법인이기 때문에(즉 사람이 아니라서) 스스로 항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들, 혹은 주주들이 CEO가 회사의 이익을 챙기고 있지 않다고 항의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우리의 대리자를 감시하는 느낌이었지만, 여기서는 수혜자들의 이익을 잘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대표의 행동을 비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항의 과정에서 누가 가장 수혜자의 이익을 잘 아는 사람인지 불투명하면 분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까의 예시로 돌아가자면 노동자들과 주주 중 누가 더 회사의 이익을 잘 아는가로 경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오면서


우리는 항상 대표되거나 다른 누군가를 대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대표의 행동은 피대표자들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누구를 대표로 뽑느냐 그리고 대표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이번 레터를 읽으시면서 대표에 대해 한 번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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