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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Feb 18. 2022

프롤로그

; 음식에 깃든 추억

어린 시절 일 하시는 엄마를 대신해 외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우리 할머니는 어떤 음식도 뚝딱 해 내셨다. 그때 먹은 음식들은 먹지 않고 떠올리기만 하여도 행복한 기억으로 나를 채워 준다. 또 어느 날에는 여러 번 시도해본 끝에 드디어 할머니의 맛이 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졸업논문이 통과되었을 때보다 더 뿌듯하기도 하다.


마산에서 나고 자라, 진주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고, 서울 출신 해군 장교와 결혼을 했다. 내가 진주에서 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학교 앞 분식집에서 냉면을 시켜도 그릇에는 육전이 고명으로 올라 와 있었다. 서울에서 분식집을 처음 갔을 적에는 왜 순대를 시키면 소금을 주는 것인지, 떡볶이에는 왜 어묵이 조금밖에 들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내가 20년 넘게 먹은 순대는 질퍽한 막장에 찍어먹는 음식이었고, 떡볶이는 자고로 떡 반 어묵 반 아니던가?


신혼시절 '호박전'이 나에게는 늙은 호박을 착착 썰어 부친 달콤한 음식이지만 그에게는 애호박을 둥글게 썰어 소금을 뿌리고 밀가루와 달걀 옷을 입혀 부친 '애호박전'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그의 쇠고기 뭇국은 맑은 장국이었고 나의 그것은 콩나물도 넣고 고춧가루도 넉넉히 넣은 칼칼한 국물이었다.


남편의 임지를 따라 전국 각지를 다니며 지역마다 음식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진해의 반찬가게에는 콩잎지가 있고 대전의 반찬가게에는 콩 튀김이 있다. 강원도 동해안의 식당에서는 주황빛의 매콤 달콤한 쌈장 대신 진갈색의 쿰쿰한 맛의 쌈장이 나오는데 이것으로 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외할머니의 음식에 더불어, 성인이 되고서야 경험한 음식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은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천생 먹보인 나를 움직이게 한다. 지난 시절 살던 곳이 그리우면 여전히 그곳에 남은 지인에게 연락해서 그때 함께 먹은 음식 이야기를 나누거나 택배로 주문해 먹고 나면 그리움이 조금은 잦아들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는커녕 추억의 도시로도 여행 가기 힘든 요즘, 지난 시절 나를 먹여 살린 음식들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자 한다. 글을 마칠 즈음에는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 없이 언제든 원하는 곳에서 그곳의 음식을 먹으러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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