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치킨집이 참 많다. 전 세계의 맥도널드를 합한 것보다 우리나라의 치킨집이 더 많다고 하니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할 것이다. 시골이라 배달 음식점이 많지 않은 우리 동네에도 치킨집은 40개 가까이 된다. 중국 음식점의 2배 정도 되고, 김밥 전문점의 4배 정도 된다. 이렇듯 치킨집은 종류도 다양하고 점포 수도 많다. 그리고 그 다양한 치킨집의 종류만큼 치킨 메뉴도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치킨은 오직 후라이드와 양념 두 가지였다. 당시에는 순살 치킨은커녕 반반 메뉴도 없었다. 우리 동네에는 치킨 브랜드도 많지 않았다. 기억에 남은 집은 장모님 양념 통닭, 스모프 치킨, 동키 치킨 정도이다.
내가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 오늘날 저녁에 우리 할머니는 항상 "효진이 통닭 한 마리 시켜 줘라"하셨다. 통닭은 짜장면에 비해 보통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 시켜 먹는 음식이었다. 방학식을 하는 날, 운동회가 끝난 날 저녁 등엔 치킨을 시켜달라고 졸랐다. 특히, 생일 파티를 할 때는 우리 집에서도 친구 집에서도 양념 통닭은 꼭 상에 올랐다.
양념 통닭은 은박지가 깔린 종이 상자에 담겨 있었다. 닭이 워낙 커서 닫히지 않는 종이 상자는 고무줄 두어 개로 묶여 있었다. 통닭의 제일 윗면에는 땅콩 가루가 솔솔 뿌려져 있었고, 닭다리 두 개는 정 중앙에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통닭 상자의 은박지를 뜯어 내어 닭다리의 아랫부분을 칭칭 감아 내가 잡고 먹기 편하게 만들어 주셨다.
그렇게 실컷 치킨을 먹다가 새콤달콤한 치킨 무도 먹고,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일회용 도시락 용기에 있는 양배추 샐러드도 먹었다.
어른들이 거의 드시지 않아 그랬는지 닭이 커서 그랬는지 양념 통닭을 한번 시키면 며칠은 먹었던 것 같다. 남은 살은 뼈를 발라내어 도시락 반찬으로 싸 주시기도 하고, 학원에 가기 전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도시락을 다 같이 나눠먹던 그 시절에는 누가 양념통닭을 싸 왔다는 소리가 들리면 너도 나도 한입씩 달라며 친구 도시락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
어른이 되고 원할 때 언제든 치킨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어릴 때 먹던 그 양념통닭의 맛은 어느 치킨집에서 시켜도 느끼기 힘들다. 내가 닭을 정말 좋아해 너무 자주 먹어서 가끔 특별한 이벤트가 있던 때에만 먹던 그 치킨 맛을 느낄 수 없게 되었는지 정말로 맛이 달라져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옛날 양념 통닭의 맛보다는 손녀에게 맛있는 부위만 먹이고 싶어 살을 발라주시던 할머니의 손맛이 더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