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볶이'라는 음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같은 학년 남자아이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다사랑 분식"이 학교 정문에 문을 열고 나서이다. 고학년이 되어 용돈이 오른 우리는 한 개에 백 원 하는 떡볶이집을 떠나 한 그릇에 오백 원 하는 분식집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다사랑 분식도 그렇게 가게 된 분식집이다.
다사랑 분식의 떡볶이는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큰 궁중팬에다 재료를 넣고 끓여 그릇에 담아 주는 일종의 즉석 떡볶이 었다. 매운맛보다는 달콤한 맛이 더 강한 그 떡볶이는 국물이 많은 떡볶이 었다. 떡과 어묵을 다 먹고 나서 남은 달콤한 국물을 쭈욱 들이켜고 나면 그릇에는 라면 부스러기 몇 조각이 있는 날도 있었는데, 위생 개념 따위 없는 초등학생에게 그런 날은 어쩐지 횡재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궁중팬에 떡볶이 양념을 잔뜩 만들어 두었다가 떡볶이며 라볶이 등을 볶아 내신 것 같다.
6학년 여름방학,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자산동 아파트에서 월영동 새 아파트 단지로 떠났다. 4학년이던 동생은 아파트 단지 옆에 새로 생긴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반 학기가 남은 나는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녔다. 등교는 옆 고등학교 선생님인 아빠가, 하교는 학교 근처에서 과외를 하시던 이모가 맡아서 해 주셨기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다.
문제는 토요일, 학교 근처 성당의 주일학교였다. 6학년 초 성가대를 같이 하자는 동네 동생의 권유에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당시 우리 집에서 혼자 성당을 다니고 있던 나는 동네 성당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친구들이 있는 그 성당을 떠나기도 싫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받은 용돈으로 학교 앞 분식집에서 끼니를 때우고 조금 놀다가 성당을 갔는데, 그때 '라볶이'를 처음 먹어 본 것이다.
다사랑 분식에서 라볶이를 시키면 꼬들꼬들한 라면이 떡볶이 국물에 삶겨서 나왔다. 떡과 어묵은 거의 없었어도, 얇은 라면 면발에 달콤한 양념이 베어 참 맛이 좋았다. 면발을 후루룩 먹고 아삭한 단무지며 깍두기 한 입을 먹었다. 지금도 그 라볶이 맛이 떠오르는데 약간 케첩 맛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라볶이 한 접시를 먹고서 같은 분식집에서 파는 샌드위치 반 조각을 사 먹고 나면 성당의 어린이 성가대 연습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한 즉석 떡볶이집에서 라면 사리를 넣은 떡볶이도 많이 먹어봤고, 피자 치즈며 해물이며 이것저것 잔뜩 넣은 라볶이도 여러 번 먹어 보았다. 지금까지도 라볶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자주 먹느냐면,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들은 이웃 가족이 남편에게 라볶이 하나 사들고 집에 들어가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그 어느 라볶이도 주일학교에 가기 전 친구들과 사 먹던 다사랑 분식집의 그것만큼 맛있지 않다. 언제 한번 케첩을 살짝 넣고 설탕도 듬뿍 넣어 그 시절의 라볶이 맛을 흉내 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