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억 조각 몇 개를 보고 왔다 이 사람 참 신기하게도 살았다.
생각하는 것도 신기하고 또 나와 닮았다.
그래서 내가 이 사람의 글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제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1. 전여자 친구 오빠와 만난 것 2. 이름 훔치는 원숭이 에피소드다.
이 사람은 자신의 세계에서 벌어진 묘한 환상을 현실로 끄집어내,
있던 것처럼 기억하는 기묘한 재주가 있다 굉장히 기묘하다.
몇몇 에피소드는 소설 쓰는 군 (나쁜 의미는 아니고 의사가 진찰한다, 요리사가 요리한다 같은 의미로) 특이한 주제야 라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아무것도 없는 건조한 평지에 철학의 전봇대를 꽂아둔 느낌이다. 그 주변엔 몇몇 개의 잔디 조각과 숲이 있다
새가 가끔 쉬거나 똥 싸도 괜찮은 그런 느낌
무슨 소리냐면 주변의 상황이 어떻든 의연하고도 차분하게 곱씹는 거 같은 여유와 평화로움이 묻어 나온다. 그리고 그것 근처에는 시간이 느리게 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강렬하지 않은 외침. 깊은 곳에서 축적되어 언젠가 터질 거 같은 감정선이 매력이다.
전 여자 친구 오빠는 덤덤하고 뭔가 담백하다. 곰 같기도 하고 백수처럼 보이는데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고, 내가 이 인간의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받은 건지 잘 모르겠다.
우리 오빠들이 생각나서 일 수 도, 혹은 여자 친구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느낀 걸 수 도 있다. 그 사람의 부모나 형제를 아는 건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보고 듣는 것이다.
그 사람을 알려면 환경을 알아야 한다 환경도 그의 일부다.
사람이 죽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은 것 같다.
하루키 소설에는 영문도 모르게 홀연히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
죽었다는 말의 언어는 자극적이고 날카로워서 소문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나 보다.
내가 죽으면 내 뼛가루보다 내가 부고소식이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두 번째는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다. 벌써부터 예사롭지 않다.
신비한 생명체와의 만남은 클리셰적이면서 탄탄한 플롯이다.
흥미롭기도 하고 (책은 정적이라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가 있는 게 중요하다.)
난 처음에 저자가 지어낸 에피소드인 줄 알았다.
그야 당연히, 말하는 원숭이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런 건 꿈에서 혹은 망상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와 같은 맥락인 줄 알았다. 저자도 그걸 의식했는지 뒷장에선 진짠데... 아 팩튼데... 근데 아무도 안 믿겠지... 같은 말을 중얼중얼하기에 그냥 믿어주자라고 생각했다.
그 편이 더 재밌기도 하고
어쨌든 하루키 소설답게 또 성욕 이야기가 나왔고 신기하게도 성관계가 주제는 아니었다.
이 원숭이는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훔쳐 욕망을 채운다고 한다. (이 원숭이는 인간 교수 밑에서 자라서 거의 반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 밑에서 살아와 인간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미친 이상성욕 원숭이가 되어버렸다.
이름을 훔치는 건 의외로 간단한데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 같은 신분증에다가 염력을 불어넣으면 된다.)
이런 묘사는 원숭이도 마음이 있어요 라는 의미인가
일본인들은 고독함을 제일 큰 아픔으로 여기는구나 싶었다.
사회적인 죽음과 도태를 두려워하면서 그런 소재와 현상이 방비하는 걸 보자니 인간의 모순을 다시 곱씹는 느낌이다. 혹은 두렵기에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외침일 수도?
이 책을 다 읽은 소감으로는 인생을 참 다채롭게 사셨군요 아님 다채롭게 느끼신 걸 수도? 내 인생도 그냥저냥 흘러간 거 같아도 하나하나 파고 보면 은근히 재밌고 흥미롭다.
내 조각조각 인생 기억이 책이 되어 누군가의 뇌에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집값도 비싼데 말이야. 지금적은 작은 조각글도 나중에 희소가치가 엄청나질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별 볼일 없는 인간이지만 달라질 수 있다 충분히.
하지만 가능성은 그곳에 있는 거지 그걸 휘두르는 건 나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