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를 마주하고 있는 10대의 시선
10대는 의외로 단조롭고 단순하게 흘러갔다. 시험을 치기 위해 공부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위해 친구를 사귀고, 해가 뜨면 해가 지듯 당연한 법칙대로 당연한 답을 찾아가며 살아왔다.
이제 나와 우리들은 그 끝자락에 서 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광대이자 상담사 역할을 맡고 있다.
19살 이전엔 주로 친구 문제, 공부 문제로 고민을 나눴지만, 요즘은 하나 같이 같은 문제로 날 찾는다.
표현만 다를 뿐, 결국엔 같은 질문이다.
“내가 이걸 하는 게 맞을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건 뭘까?”
모두 자기 자신을 잘 모른 채로 살아간다.
그러다 결정의 순간이 닥치면 급하게 생각해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단기간의 고민으로 해결되지 않고, 급한 선택은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나는 이런 고민은 생활에 배어들어야 풀리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경험하고, 생각하고, 자각하는 것
하지만 이 과정이 지나치게 과해지면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예민해지고, 과민반응하게 되며, 끝없이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런 상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뭘까?
솔직히, 나도 모른다.
난 단순 무식한 방법으로
생각을 키워 날 알게 된 것이다.
결코 내가 의도하거나 원해서 한 게 아니다.
그리고 이건 흉내낸다고 좋아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이 결정을 지금 내려야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알고, 깨닫고, 선택하는 일.
지금이 그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고 믿는다.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1.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 있다.
2. 시간이 많다.
3. 체력이 많다.
이 모든 건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받침대가 된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내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적다.
나는 인간 각자마다 지랄의 총량 있다 생각한다. ‘지랄의 총량’이란?
자기 멋대로 인생을 휘어잡는 시간, 행위를 뜻한다.
즉 내 인생을 내 멋대로 할 기회를 줘야한다는거다.
그건 반드시 일정 수치만큼 해소돼야 끝나며,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그 총량을 소모해도 괜찮은 때다.
난 착한 딸이 되고자 공무원의 길을 선택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날 알았고, 내 꿈을 가졌다.
아무리 상상해도 자리를 박차고 떠나갈 나만 떠올랐다.
그래서 난 나를 내 미래에게 맡기기로 했다.
누군가를 위해 살기보단,
미친 듯 뻗어나갈 나의 다중우주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난 이 선택이 옳다고 믿는다.
시간에 쫒기며 끌려 나가는 친구들을 보자면 마음이 착잡하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에 그들이 없을까봐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음에 더 안타까움을 느낀다.
내 조언 뒤엔 ‘하지만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 문장에 담긴 부담감과 감정을 이해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문장인걸 알아주길,
그리고 네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길 빌어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