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데려간 곳에서

책리뷰/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by 양심장

카프카 1 후기


'해변의 카프카'는 제목이 굉장히 시적이라 골랐다. 제목만 보면 바닷가의 여자아이와 몽롱한 여름방학을 보낼 것 같은, 그런 서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물론 실제 내용은 그렇게 흘러가진 않는다.

그건 내 환상이다. 책의 일부는 그런 분위기가 있지만.


이번 책은 구조가 좀 특이하다. 시점이 두 개인데, 하나는 가출한 청소년의 이야기이고, 하나는 머리가 온전치 않은 아저씨 이야기다.


나는 소년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성장물과 모험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방황하며 시적인 감정을 내뱉는 문장들을 좋아해서.


반면 아저씨 파트는 조금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래도 이 아저씨, 머리만 이상한 게 아니라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개쩌는 능력이 있다.

이 환상적인 요소들로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소년 이야기에서 가장 좋았던 건 도서관에서의 일과 오두막집에서의 일이다.


특히 도서관에서는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인물, 오시마라는 인물이 나온다.

뭐랄까, 그냥 성격이 좋다. 갈 곳 없는 주인공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준 사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똑똑하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둘이서 책에 대한 감상을 말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이 참 즐거웠다. 다음에 읽을 책으로 참고하기도 했고.


예를 들면, 주인공이 아이히만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부분이 있다.


아이히만은 나치 정권에서 큰 직위에 있었던 사람인데, 주로 유대인을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을 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일을 얼마나 빠르고 싸게 완수할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죽어가는 이들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이 일에 대해 경악하고 경멸하겠지만, 굳이 따지고 보면 완전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그는 그들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았으니까. 없애야 하는 일거리였을 뿐이다. 마치 게임 속 적들처럼, 도둑 잡기 카드처럼 빨리 소모해야 할 것. 그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느낀 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판단할 주관이 필요하다는 점, 아닐까?


그래서 사회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히고, 공통된 주제를 학습시키고, 주관을 가르치려 하는 걸까.

사회에 올바르게 스며들 수 있도록. 그렇기에 가르침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파트라 특히 좋았다.


또, 오시마 씨는 굉장한 반전이 있는데, 이게 정말 놀라웠다. 이 작가는 항상 뭔가 하나씩 놀라게 한다니까.


오두막집 파트는 분위기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아무도 없는, 고독과 따뜻하게 동거하는 느낌이라 작은 풀잎 하나, 공기 하나도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잠시 주인공이 되어 그 오두막집에 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나도 시골에 살아서, 날 집어삼킬 것 같은 밤하늘과 노래하는 잎사귀들을 알아 더욱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밤하늘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별이 잘 보이는 날 밤하늘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별들이 내게 다가와 날 잡아먹을 것 같다.


마치 4:3 화면이 16:9로 확 바뀌는 느낌? 눈알을 가득 채워 흐르는, 코즈믹 호러 같은 감각.

근데 이게 은근히 중독적이라 기회가 되면 한번 해보는 걸 추천한다.

살면서 내가 우주먼지라는 걸 물리적으로 자각할 순간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책의 후반부가 되면, 처음엔 따로 놀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길로 엮이기 시작한다.


이게 점점 책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초반에 주인공이 “이 여자가 내 엄마라면... 누나라면...” 하고 스스로를 누군가의 산하에 두려는 듯한 말을 많이 하는데,


나는 '아 여미새 시작했구나 그래, 이 사람 책엔 꼭 여자가 들어가지. 와라, 얼마나 미친 사랑을 보여줄 거냐' 이런 마음으로 받아들였는데,

오우 세상에. 다 이유가 있었다!


심지어 고양이 아저씨도 뭔가 커다란 메인 키가 되는 것 같고, 아마 이 아저씨가 주인공의 부계...

혹은 또 다른 나? 뭐 그런 거 아닐까.


2편에서 이런 내 궁금증들을 해소시켜 주겠지. 기대하며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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