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과 어른들은 명언을 남기거나 조언하는 걸 좋아한다.
그중 특히 좋아하는 건 자신의 일대기를 이야기하는
거다.
거의 모두 그렇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런 이야기 듣는 걸 지루해한다.
나도 예전엔 그랬다.
시간도 안 가고, 왜 그런 얘길 하는지 모르겠고,
듣다 보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만 들었다.
특히 사춘기 땐 더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지루하던 이야기가 이상하게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들 졸거나 멍 때릴 때,
나만은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왤까?
왜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그 일대기를 즐겁게
들을 수 있었을까?
바로,
난 선생님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예의 없고 어이도 없는 헛소리지?
라고 생각한다면, 해명할 기회를 줘라.
난 선생님을 내 세계의 NPC로 보지 않았다.
다른 세상의 인물, 즉 극의 주인공으로 본다.
그저 내 인생의 선생님이라면,
내 레벨을 올려줄 NPC, 기술을 가르칠 NPC다.
특이해봤자 날 도적으로 만들어줄 직업 전직 NPC고,
물론 이것들도 굉장한 일이다.
내게 영향을 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냥 캐릭터보다
회귀자나 이 소설의 원작 주인공이 더 매력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거다.
그래서 그들을 또 다른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거다.
그들이 주인공이 된 순간,
그들의 입에선 뻔하고 흔한 조언이나 자기 자랑이 아니라
소설의 도입부나 영웅의 일대기가 나올 수 있다.
그렇게 여기면 어떤 내용이든 흥미롭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가끔,
그들이 어쩌다 그런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원인 같은 거 뿌려줘서 떡밥 회수하는 재미도 있다.
가끔 궁금한 걸 댓글 달 듯 물어봐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좀 짜증 나는 인간이라면…
‘서사 필터’나 ‘불쌍함 필터’ 같은 걸 씌어두는 게 좋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런 느낌으로 듣는다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려고 노력은 한다.
뭐든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한 것 같다.
똥도 어떻게 보면 거름이고,
돈도 어떻게 보면 그림 그려진 종이다.
머릿속 인식이 그것들의 가치와 용도를 만든다.
언젠가 후배가
“인간에게 한계가 있어서 너무 무력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한계는 규정됨으로써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규정하지 않으면 아직 무한한 거고,
내가 보지 못했다면 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명확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는 게 중요한 거겠지.
이상한 가치관과 필터는
내 세계에 불순물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인식과 관점을 어떻게 더 넓힐 수 있을까?
이건 그냥…
더 경험하고 알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진짜 뻔하고 진부하고 지루한 말이지만
난 이것밖에 모르겠다.
공부를 잘하려면 꾸준히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듯.
식견도 더 많은 학습과 경험으로 넓혀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꾸준하고 정직한 방법이 제일 부작용이 적다.
도박보단 꾸준한 일이 더 안정적이니까
난 느린 방법으로라도 해야겠다.
더 많이 배우고 학습하며
내 식견과 주관을 뚜렷이 하려 노력하자.
게을러지지 않도록.
불행해지지 않도록.
이 글이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졌다면
날 어딘가의 주인공으로 봐주길 원한다.
그 순간
이 이야기는 지루한 조언이 아니라
서사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다.
(+ 항상 뭔가 이상한 주제를 들고 교훈적인 결론을 내리는지 모르겠다.
이게 내 스타일인 건가?
아니면 좋은 글에는 좋은 결론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인 걸까, 혹은 인생의 오든 일들이 교훈덩어리인 걸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겠지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