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 발표지원 선정작-이어진
너의 기억을 꺼내 지도를 펼쳐보면, 너는 어디에서 왔니? 질문하는 바람이 있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나? 의문을 던지는 추위가 있고 사랑이라는 실체를 흐르는 강물에 던져 버린 후, 나는 너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았다
네가 방울방울 맺혀 있는 창문 위에서 나는 가끔 물방울을 추억할 뿐 물방울과 물방울 속에는 아주 작은 알갱이의 눈송이가 있다 했는데 그날의 온도와 그날의 습도를 놓쳐 버린 후에도 눈송이는 아름답기만 하지 마음속에 스며 있다가 어디로 흩날려 가만가만 쌓이는 눈송이, 쌓이는 마음이라서 다행입니다 나는 한 송이 두 송이 쌓이는 기쁨의 노래를 백지 위에 쌓고 있고,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우리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겁니까 그 무한한 흩날림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지 못하고 나는 물방울과 물방울 사이의 견고한 유리창을 바라보고 있다 투명하고 아름다워서 깨지기 쉬운 유리창, 만지면 만질수록 스스로를 알아차릴 수 없는 유리창 영혼이 없어서 그래요 투명한 눈망울만 갸웃거리는 유리창
기쁨이 사라진 이후로 나는 웃음이 없는 얼굴로 거리를 돌아다녀요 마음속에는 와장창 깨진 눈송이들이 흩날리는데 너는 어디로 흩날릴지 모르는 가벼운 눈송이였다 손에 쥐면 반짝반짝 녹아 버리는 생각이 없는 눈송이, 눈에 넣으면 즐거움을 즉석에서 발설해 버리는 생각이 무수한 눈송이
어디에서부터 오고 있는 그 많은 희고 탐스러운 눈송이 나는 무한한 눈송이의 계곡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먼 미래에 도착할 수는 있는 겁니까 나는 어리석은 질문들을 장작처럼 모아 놓고 불을 지른다 깊은 계곡에서 활활 불타고 있는 눈송이들 깊은 땅속에서 활활 끓고 있는 눈송이들
너는 생각이 없는 눈송이처럼 까맣고 고요하기만 하고 불타고 남은 눈송이처럼 우리는 미래에서 활활 타오를 수는 없는 걸까요 그러한 눈송이들을 마중 나갈 수는 없는 걸까요 춥고 딱딱한 거리의 나무들이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서 검은 눈송이들을 기다린다
그 순간의 떨림, 그 떨리는 흐느낌
빗물은 눈송이들의 나라에 도착할 수가 없을 거 같다 하얀 눈송이들의 무덤 속에서 아름다움을 포기한 추위가 한껏 외투를 껴입는다 나는 때로 눈송이의 표정으로 잠들고 싶었지 눈송이와 눈송이가 흩날리는 도시 위에 우산들이 걸어 다닌다 나는 얼굴이 없는 것처럼 웃음을 숨긴 채 눈송이들을 퍼뜨리며 우산 위를 걷고 있다
먼 미래에서 도착할 거 같은 하얗고 검은 눈송이가 있었지 입술 위에 올려놓으면 가만가만 눈송이가 되어 흩날리는, 검은 꽃잎도 흩날리고 우산도 흩날리고 너는 내 가느다란 속눈썹 위에서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먼 미래에 너는 커다란 눈송이가 되어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