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사이, 론다(Ronda)를 걷다

by 글열음

<론다>


안달루시아 지방 말라가 주에 위치한 소도시 론다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지도를 보면 론다는 그라나다 보다 더 남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알바이신 근처 호텔에서 간단한 빵과 커피, 과일로 아침을 먹었다.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론다로 향하던 중, 창 너머 보이는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길가에는 어린이가 어머니 손잡고 유치원에 가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또는 초등학생쯤 또는 청소년쯤 돼 보이는 학생들이 걸어서 등교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아이들 등교하는 모습이 떠 올랐다. 어느 나라에서나 아침시간이면 볼 수 있는 광경인 듯했다. 어른들은 일터로 가는듯한 모습도 보였다.


역사적으로 론다는 기원전 2세기 로마인들이 살기 시작하였던 산골 마을이었다. 그라나다 니스로 왕조 시기엔 왕국의 일부지역이었다. 이슬람 왕국이 멸망하면서 자연히 이슬람 세력이 떠나게 된 곳이었다 또 고대 포에니 전쟁과도 연관이 있는 론다는 릴케가 꿈의 도시라고 불렀고 헤밍웨이의 소설 속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이 된 곳이었다. 헤밍웨이와 릴케가 걸었던 이곳, 나는 이곳을 걸어면서 어떤 느낌을 가슴에 새길까...


아침 날씨는 비교적 따뜻했고 도시는 은빛 흰색으로 관광객들을 유혹했다. 이곳은 협곡 위의 도시로서 깊이 약 120m의 엘타호 협곡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은 누에보(Nuevo) 다리가 유명했다. 18세기 지어진 곳으로 협곡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고 있는 다리가 있었다. '새로운'이란 뜻을 가진 이곳은 이미 그 이전에 목조 다리가 있었던 자리였다. 마침 그날은 다리 공사를 하는 듯해 보였다. 오후가 되면서 날씨는 서서히 기온이 올랐다. 관광객들은 옷을 얇게 입은 사람들도 보였다.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여성과 반팔티셔츠를 입은 남성들도 길에서 지나쳤다..


<누에보 다리>

<누에보 다리>


누에보 다리는 절벽의 협곡과 다리의 구분을 할 수 없을 만큼 한 덩어리로 된 듯 보였다. 이 다리는 오랜 공사 기간을 거쳐 완공되었다. (1751년 -1793) 무려 42년 동안 건설되었다고 한다. 길이가 길지 않은 다리인데도 공사기간이 42년이라니, 아마도 그것은 많은 시간을 들여 안전하게 지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시가지와 농경지가 내려다보였다.


하늘은 맑았고 해는 낮게 떠 있었다. 햇살이 투명하게 내려와 초록 농경지를 환하게 비쳤다. 멀리 보이는 들판은 조용했고 빛은 따스하게 비쳤다. 그곳에는 푸른 식물이 푸릇푸릇 자라고 있었다. 사계절 따라 달라질 풍광들을 연상해 본다. 부서지는 햇빛 사이로 아스라이 보이는 봄 풍경들.....


저 멀리 훤하게 보이는 전경을 보며 옛 군사적 요새로서 중요한 위치였음이 와닿았다.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본다. 시가지에는 흰색의 집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때 마침 낮게 비추는 햇살이 그 위를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전망대 주변에는 여행자들이 북적였다. 협곡을 두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하얀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론다의 협곡>

론다의 계곡이 보인다. 이곳은 먼 옛날엔 종교재판, 1930년 스페인 내전등 죄수들의 수감소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한 때는 무시무시한 종교 재판이 많이 열렸다. 주로 무슬림, 유대인, 이교도들에 대한 참혹한 형벌이었다. 이곳에서도 희생이 많이 되었다. 내전당시엔 공화파, 반공화파로 상대를 고문하는 장소 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곳이었다. 여기서도 종교재판을 했다니..


한때 사람들 생명이 사라지기도 했던 주변을 바라보고 있다. 상대편이라는 대상을 두고 벌였던 살벌한 폭력이 일어났던 곳,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겪은 악몽의 장소이자 슬픈 현장이었다.

<투우장>

<투우장>


둥근 흰 건물은 투우장이었다.

론다는 스페인 투우의 발상지로 1785년에 세워진 투우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다.


투우는 현재 동물학대등 여론으로 경기가 중단되었다. 오래전 어느 영화에서 본 투우는 애초에 공정한 싸움이 아니다는 느낌을 당시에 받았다. 그때 영화로 본 기억으로는 겁에 질린 소는 본능으로 맞서지만, 인간은 이미 철저하게 짜여진 구조에 따라 경기를 이어갔다. 이런 의례적인 공연으로 한때 소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울음소리가 멀리까지 퍼졌을 것이다. 이 광경을 관중들은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광기로 가득 메웠을 장소였다. 투우 경기가 멈추기 전까지 수많은 소들이 관중들의 놀이에 희생되었던 곳이었다. 투우장을 보면서 경기의 잔혹성이 와닿았다. 이곳이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라클레스 동상>

<폴라사 델 소코로 광장>


시내 중심가 폴라사 델 소코로 광장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1975년까지 프랑크총통의 광장이라고 불리어졌다. 프랑크 사후 근처 성당이름을 따서 현재 광장지명으로 변경이 되었다. 이때 소코로(SOCORRO)는 '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중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반신반인(半神半人) 헤라클레스의 동상이었다. 헤라클레스가 두 마리의 사자를 제압하는 모습과 그 양쪽 옆에는 헤라클레스기둥을 묘사하고 있다. 아래로 헤라클레스를 상징하는 초록색, 흰색줄무늬,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엠블럼이 중간에 들어 가 있는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신화에서 등장하는 헤라클레스는 산을 쪼개어 그 사이에 스페인 남부에 지브를 터 해협( 유럽과 아프리카)을 만들었는데, 이를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신화에서는 가장 강력한 영웅인 헤라클레스가 스페인 국경을 가르는 역사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여기서 헤라클레스 조각상을 보다니......


<까예 에스삐넬>


시내 중심지로 걸음을 옮겼다.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거리가 나왔다. 이 거리는 까예 에스삐넬이었다. 사람들은 관광상품 가게를 둘러보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는 흰색건물들로 깨끗하고 걷기는 편안했다. 옷 가게에서 빨간 난방셔츠를 관심 있게 살펴봤다.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점심 식사는 하몽 상그리아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 숙성했다는 하몽은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듯한 맛이었다.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 된 대전에서 오신 부부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유쾌한 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세비아로 이동했다.






론다 시내

관광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가게 입구에는 모형 소가 손님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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