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Sevilla), 과달키비르 강 위의 햇살

황금탑과 대성당 이야기

by 글열음



론다를 떠나 투어 버스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지나 세비야에 도착했다. 세비야 하면 콜럼버스와 마젤란이 떠 올랐다.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 세비야는 강한 햇빛과 한낮 기온은 우리나라 초여름 정도의 기온으로 더웠다. 시내 과달키비르 강변 근처에는 더운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열대수들이 우뚝 서 있었다. 기온이 점차 오르자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가방에 넣었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단단하고 이색적인 탑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는 열대수가 탑을 지키는 호위병처럼 꿈쩍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발걸음을 서서히 옮기며 시야는 탑 위쪽 꼭대기에 머문다. 이때 황금모자를 씌운 듯한 탑 꼭대기가 번쩍였다. 태양이 뿌려대는 화살을 튕겨내듯 빛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황금탑, 이곳은 세비야를 지킨 망루였다.



<황금의 탑>

13세기 초 무어인들이 건축했다는 이 탑은 알모 하드 이슬람 양식으로 건축되었다고 했다. 특징은 단순하면서도 견고하고 방어적인 구조였다. 가이드 해설은 하층부에는 12 각형의 구조로 2층은 6 각형 3층은 원형인 3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높이는 약 36미터라고 한다.


탑의 유래로서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보관하거나 옮기던 장소였다는 설이 있었다. 또 다른 기능으로서는 군사적 감시탑 및 방어시설로서 또 한때는 감옥이나 세관창고로써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는 해군 박물관으로 신대륙 개척 관련된 전시물이 있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견고하게 서 있는 탑은 옛 스페인 부흥기를 나타내는 듯한 느낌이 와닿았다.




<과달키비르 강변>

작은 배가 강가에 정박 중이었다. 이곳 강변은 마젤란과 연관이 있었다. 1519년 과달키비르 항구에서 5척의 배를 이끌고 아시아 향신료를 찾아 나선 곳이며, 마젤란의 세계일주 출발점이 되었던 지점이었다.


배를 띄웠던 항구를 바라보며 16세기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게 했던 인물이 떠 올랐다. 콜럼버스, 마젤란 그들의 용기와 모험심은 스페인을 부흥 국가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바다를 마주 하고 있는 지리적인 영향으로 그들은 항해술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결과적으로 바다를 통해서 지구를 이었던 그들은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정박 중인 배를 보며 잠시 그 당시를 연상해 보았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 주변 위로는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마젤란이 이 항구를 떠날 때도 저 푸른 하늘이 저렇게 맑게 펼쳐졌을까? 여름철 더운 공기가 구름을 모으듯 하늘에는 흰 구름이 뭉게뭉게 펼쳐 있었다.

그 옛날 기억을 흩트리지 않으려는 듯 강물은 조심스럽게 흘렀다.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으로 걸음을 다시 옮겼다. 대성당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답게 성당이 많았다. 이곳 세비야 대성당은 12세기 후반에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15세기 후반에 다시 지어진 건물이었다. 고딕 신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복합적인 양식이 섞여있다고 한다. 외관 건물은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성당은 매우 웅장하고 규모가 컸다. 그들이 이슬람교를 물리친 후 기독교국가로서 단단하게 세운 결과물들로 보였다. 우뚝 솟아 있는 성당은 승리자의 모습이었다.



세비야 성당 내부 제단이 보인다. 대단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제단은 무려 80년 만에 완성되었다. 성서에 근거한 조각작품이었다. 성모마리아 품에 안긴 예수상이 보였다. 성당 내부는 높고 관람객이 많아서 자세히 관람을 하기는 어려웠다. 가이드 해설로는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이 무려 1.5톤이나 제단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많은 금으로 꾸며진 제단을 보며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푸른색 망토를 입은 모습 '성모마리아 상'이 보인다.

가이드 해설은 성당에서 푸른색 옷을 입은 그림이나 조각은 대부분 '성모마리아상'이라고 했다.



<콜럼버스 관>이 세비야 대성당에 있었다


신기하게 관은 땅에 묻히지 않고 지상에 들려 있었다. 네 명의 스페인 옛 왕국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나 바라의 네 명의 왕이 동관을 어깨 위에 들어 올리고 있었다. "스페인 땅에 묻히지 않게 해 달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는 신세계에 묻히기를 원했다. 실제 그의 사후에도 그의 관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한 채 여러 땅을 떠 돌다 현재는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그의 관이 땅에 놓이지 않고 들려 있는 모습을 보며, 그의 삶처럼 사후에도 떠돌아야 했던 운명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스페인 이사벨 1세 여왕의 후원을 받아 신대륙 발견이라는 업적을 낳았다. 그로 인한 스페인 이사벨 1세(1451-1504) 여왕은 콜럼버스와의 만남으로 스페인을 거대한 부를 거머쥐게 한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지만, 이는 동시에 식민지 개척과 관련된 복잡한 역사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학창 시절 세계사 수업 시간에 등장했던 콜럼버스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떠 올리며 이곳 가까이에서 그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비록 먼 옛날 지난 이야기 일지라도 그의 사후 무덤을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을 믿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지난 흔적을 기록한 역사, 나는 그 역사적 사실을 마주할 때 생각이 많아진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히랄다탑

세비야 대성당 근처에는 하늘 높이 쭉 뻗은 높은 탑이 우뚝 서있었다. 히랄다 탑이었다. 히랄다탑은 세비야 성당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탑 높이가 약 104m로 12세기경 이슬람교도가 만든 성에 부속된 탑이라고 했다.


이탑은 신기하게도 내부엔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통로가 조성되어 있다고 했다.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내부를 관람할 수 없는 나는 그저 밖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탑은 한때 지진으로 탑 꼭대기가 훼손되었서 가톨릭교도가 르네상스식으로 종루를 교체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탑 종루 위 쪽은 르네상스식 가톨릭 종루로 되어있었다. 탑 중간에서 아랫부분까지는 이슬람식(무데하르) 탑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내부 입장은 하지 못했지만, 외부 건물에 남겨진 흔적들을 바라보며, 세비야에서 이슬람은 한때 황금기를 누리며 문화적으로도 최고 번성기였다는 것을 느꼈다. 탑은 이슬람형태와 기독교형태로 혼합이 되어 현재 이슬람문화는 기독교 문화와 같이 공존한 채로 1개의 탑으로 살아있었다. 이때 나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생각보다 균형 잡힌 아름다움이 다가왔다. 그 탑을 바라보며 문화란 서로 잘 어우러질 때, 오히려 더 깊은 아름다움이 스며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람 문화와 공존하는 세비아는 16세기 신대륙과의 교역 중심지로 번영하며 스페인 제국의 핵심도시가 되었다.


거대한 성당 내부 관람을 마치고 오렌지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 벤치에 앉아 휴식을 하고 있던 사이 주변엔 이슬람식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에는 줄지어선 나무에 오렌지가 달려 있었다.


또 다른 이슬람식 건축물이 보였다. 이곳은 오렌지 향이 바람에 일렁이는 듯 노랑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풍요로움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게 되는 시각적 감각이 순간적으로 미각과 후각을 일깨웠다.

안토니오 마차도가 지은 시가 떠 올랐다.


"나의 유년기는 세비아 뜰에서의 기억들과

레몬나무가 무르익는 (....)"


자화상/안토니오 마차도 <스페인시의 이해>


시인이 노래한 "레몬나무가 무르익는" 대신 이곳 세비야 대성당엔 노란 오렌지가 무르익고 있었다.

오렌지 정원에 앉아 주변에 가득한 오렌지가 뿜어 내는 향기에 취했다. 아마 근처 과수원엔 레몬나무가 가득 한지도 모르겠다. 순간 레몬향이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지런다. 하늘엔 옅은 흰구름이 잠시 태양을 가린다.


다시 스페인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웅장한 성당 내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