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와 반 고흐
가을은 여기저기를 빛으로 세상을 입힌다. 오랜만에 경주 여행길을 나섰다. 경주는 벚꽃핀 봄의 계절도 아름답지만 단풍으로 물든 가을도 아름답다. 경주를 여행할 때는 대릉원과 첨성대, 그리고 계림이 있는 교동 근처를 좋아한다. 이번에도 교동 일대를 목적지로 정했다. 그곳을 향해 가던 중 첨성대 근처에는 마침 가을 꽃밭을 조성해 둔 곳을 지나게 되었다. 여러 종류들의 꽃이 피어있었다.
그중에 노란 꽃과 초록잎이 무성하게 무리를 지어 가득 피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바라기였다. 커다란 둥근 접시 같은, 또는 보름달 같은 해바라기가 환하게 웃고 있다. 둥근 얼굴엔 짙은 갈색 씨앗이 빼곡하게 박혀있다. 한 알 한 알의 많은 생명을 한 아름 품고 있는 모습은 풍요롭다. 내년 봄 다시 이곳 들판에 뿌려질 듯한 씨앗들. 언 듯, 해바라기 한송이는 작은 생명 창고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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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를 흔히 행운을 주는 꽃으로 여긴다.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해 아파트 정원에 심어져 있던 서 너 그루 해바라기가 핀 것을 본 적이 있다. 꽃송이가 정말 컸다. 지금생각하니 그날도 이맘때쯤이었다. 해바라기가 길을 걷던 나를 멈춰 세웠다. 마침 지나가던 주민들도 탄성을 질렀다. 동그란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듯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먼저 다가갔던 기억이 난다. 기분 좋음이 행운을 불러오듯. 잠시 행복감이 돌았다.
이곳 경주에서 보는 해바라기도 다르지 않다. 길을 걷던 나를 멈추게 한다. 동그란 얼굴로 환하게 나에게 인사를 하듯 하늘거렸다. 이런 모습은 오래된 이웃처럼 다정하고 푸근함이 전해진다. 또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지나가던 순한 가을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이때 한들 거리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 어린아이가 춤울 추는 듯 한들거린다.
<윤동주의 시>
해바라기를 바라보던 중 윤동주 시가 떠올랐다.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누나의 얼굴/얼굴이 숙어들어/집으로 온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누나가 주는 의미는 푸근함, 또는 감사함, 다정함이라는 뜻이 전해진다. 해바라기를 바라본다. 정말 누나의 얼굴 같이 보인다. 어쩌면 해바라기 그 자체가 누나인 듯, 다정함, 따뜻함, 그리움이 묻은 '시'라는 느낌으로 이해를 해 본다.
오래전 남프랑으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덥지만 맑은 날씨에 햇살이 반짝이던 날이었다. 그날 차창밖으로 보이던 해바라기가 떠오른다. 키 작은 해바라기가 산기슭언덕이나 들판에 노랗게 펼쳐져 있던 곳. 그곳을 지나던 그날 해바라기를 보는 순간 반 고흐 <해바라기> 작품을 떠 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당시 그곳을 지날 때 해바라기가 깔린 전경들이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날 나는 키 작은 해바라기가 무리를 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키 작은 해바라기를 처음 봤고 또 들판에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것도 처음 봤다.
그때까지 내가 본 해바라기는 우리 집 뜰에 한 두 그루, 학교 꽃밭에 한 두 그루, 그것도 키가 하늘까지 높이 올라갈 듯 키가 큰 해바라기였다. 난 그때 동화 속 <잭과 콩나무>에서 나오는 나무처럼 끝없이 하늘로 뻗어 오를 것만 갔던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도 다른 꽃들과 다르게 해바라기는 큰 키에 굵은 줄기, 넓적한 초록잎사귀, 커다란 꽃은 신기했다
어느 날 우리 집 뜰에 높게 피어 오른 해바라기가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높게 자란 해바라기 꽃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다정함, 든든함, 씩씩함이 느껴졌던 그날을....
<반 고흐>
해바라기를 사랑했던 반 고흐를 떠 올려본다. 남 프랑 아를의 햇살아래서 폴 고갱을 기다리며 서성였을 반 고흐. 그의 붓은 두꺼운 덧칠한 해바라기 생동감으로 다가오는 해바라기들... 그의 열정,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 해바라기를 그렸다니 그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은 특별나다. 화폭 속의 붓질 그림은 그의 행복한 감정이 그림에 녹였을 것이다. 폴 고갱을 맞이하기 위해 그의 작품 해바라기 그림으로 장식했던 방은 아마 해바라기 천국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현제는 그가 남긴 해바라기 작품들 자주 책이나 가끔 전시회에서 만나기도 한다.
해바라기는 꽃말은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는 의미로 다양했다. 숭배, 일편단심. 기다림. 을 담은 꽃말도 가슴이 저린다. 한결같은 사랑 기다림, 누구에게나 좋은 의미로 와닿는다. 해바라기 꽃말처럼 그런 든든함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 같다. 완전하게 내편인 존재. 누군가로부터 든든한 존재가 곁에 있는지, 누군가에게 든든함을 주는 존재인지, 해바라기는 나에게 말없이 질문을 하는듯하다. 그제야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어느 해 반 고흐 해바라기 그림을 우리 집 한 벽면에 걸었다. 풀고갱을 기다리며 그렸다는 그 그림이다. 물론 진품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파는 복제화를 구입해 걸어둔 그림은 지금도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동생집에도 걸려있다. 이처럼 해바라기 그림은 우리와 친숙한 그림이다.
윤동주와 반 고흐는 시간과 거리는 멀다. 하지만 글이나 그림에서 해바라기의 넉넉함, 그리움 또는 사랑으로 표현했다. 해바라기가 지니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경주 여행길에 우연히 해바라기가 가득 핀 꽃밭을 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계절적으로 약간 쌀쌀한 날씨인데도 아량곳하지 않고 웃음으로 반겨주는 해바라기였다. 세모 네모가 아닌 동그라미가 주는 편안함. 노란색이 주는 따스한 친밀감. 갈색 까만 씨앗의 생명은 내년을 기약하는듯한 씨앗들.... 경주뜰 해바라기를 보며 윤동주 '시' 해바라기와 남 프랑 여행길에서 본 해바라기,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생각하며 마음이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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