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갈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포르투갈은 지리적으로 스페인을 경계를 두고 넓은 대서양을 마주 보고 있는 해양국가로 나라 전체 면적은 작은 나라에 불과하지만, 한 때는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였다는 기억이 떠 올랐다. 항로에 관심을 가졌던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인 15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세계 곳곳에 식민지 국가를 거느린 나라였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등으로, 이들은 대항해 시대를 선도하며 무역 거점 중심으로 한 식민지 경영을 한 나라였다. 한 때 부강했던 나라를 이번 여행을 통해 지금까지 역사책이나 말로만 듣던 곳을 발로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먼저 그 나라는 어떤 곳일까? 어떤 것을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앞섰다.
지난밤 묵었던 세비아호텔에서 나누어 준 간단한 도시락을 먹고 아침 7시경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했다.
리스본으로 가는 길은 약 6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투어 버스로 이동했고, 가는 도중에 보이는 산과 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광들은 눈에 담기도 전에 사라져 갔다.
제법 긴 시간을 이동하던 도중, 중간에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아침 찬 공기가 몸을 스쳤다. 앞 날 세비아 여행지에서는 더운 공기로 초여름과 같았던 날씨가 리스본으로 가는 길엔 기온이 달라져 있었다. 세비아 보다 지리적으로는 위쪽에 위치해 있는 탓인지, 아직은 쌀쌀하고 추운 공기가 돌았다. 그럼에도 춥다는 생각에 앞서 이른 아침 공기가 기분 좋은 차거움이랄까, 마치 여태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것 같은 신선한 공기였다.
휴게소 커피가게를 들어서자 그곳 주민인듯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주문했다. 흰색 작은 잔에 짙은 검은색 커피가 나왔다. 딱 한 모금이다. 따뜻하고 쌉싸리한 맛이 혀에 와닿는 순간 기분이 좋았다. 진하고 깔끔한 맛은 마력처럼 행복감을 안겼다. 나는 지금까지 아메리카노를 즐겼는데 이번 여행길에서 에스프레소 매력에 빠졌다. 휴게실에서 파는 커피라서 그런지 커피 한 잔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휴게실을 나와 투어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길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 모퉁이 사이에 서 있는 굵은 나무엔 보랏빛 꽃 봉오리가 보였다. 쌀쌀한 기온에도 나무를 뚫고 나온 박태기꽃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움을 틔운 꽃은 짙은 청보라색 봉우리로 빼곡하게 달려 있었고 이때, 호기심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청 보라색 꽃 위엔 물방울이 앉아 있었다. 둥근 구슬 같은 물방울을 품고 있는 박태기 꽃이 새삼스레 사랑스러웠다. 포르투갈에서 본 박태기꽃.....
리스본(Lisbon)
다시 리스본으로 향했다. 제법 긴 시간을 지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도착하자 점심때가 되었다. 정해둔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당은 로시우 광장이 멀지 않은 곳이었고, 식당에 들어서자 소박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점심 메뉴는 '바깔로우'라는 메뉴로 이곳에서 많이 먹는 음식 같았다. '바깔로우'는 주 재료가 대구라고 한다. 이곳은 해양국가로서 바다생선 요리가 풍부할 것 같았다. 메뉴가 입맛에 안 맞아서 테이블에 제공된 과일 오렌지를 먹었다. 이곳엔 오렌지가 맛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과일은 정말 많이 먹었고, 가는 곳마다 오렌지 사과 등 과일이 풍부하게 제공되었다.
<호시우 광장>
식사를 마친 후 중심가인 호시우 광장으로 갔다. 광장 바닥은 파도 물결처럼 타일이 깔려있었다. 좀 더 먼 거리에서 광장을 바라보면 마치 바다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깔린 물결 형상의 바닥은 리스본 주민들이 직접 자갈을 들어다 만들었다고 한다. 정말 광장 바닥이 특이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광장에는 지나가는 여행객들과 휴식을 즐기는 시민이 보였다.
광장에는 높이 서 있는 탑이 눈에 들어왔다 1870년에 대리석으로 세운 탑이라고 한다. 탑 위 동상은 포르투갈 국왕 페드로 4세(1798-1834)이며 탑 아래 4개의 조각상은 정의, 지혜, 절제, 용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곳은 현재는 시민들과 관광객이 모여드는 광장의 장소이지만, 한 때는 투우장으로도 이용되기도 했고 또 다르게는 여기서도 이교도들에 대한 잔인한 종교재판과 화형식이 열린 곳이라고 한다. 포르투갈 작가인 사마라구가 쓴 책 <코끼리의 여행>에서 "종교재판은 기독교인들 사이의 통일을 유지할 걸세"라는 구절이 떠 올랐다. 당시 순혈주의를 외치던 그 시대 포르투갈의 분위기는 타 종교인 탄압은 잔인했다. 이곳도 유대인들과 무슬림인들이 탄압으로 목숨까지 잃었던 장소로 역사적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깔고 있는 광장이었다.
<톡톡이>
오후 투어는 호시우 광장을 지나 일행들과 툭툭이를 탔다. 리스본 시내를 내려다보기 위해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비탈길로 여행객들은 주로 툭툭이를 이용하는 듯했다. 우리가 탄 운전기사가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검게 탄 얼굴에 동그란 얼굴형에 동그란 눈은 귀엽게 보였다. 그는 친절하게 동생과 나를 폰카로 사진을 찍어줬다.
좁고 언덕진 도로를 툭툭이 덕분에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우리를 태운 툭툭이는 경사지고 구불구불한 길을 쏜살같이 잘 달렸다. 언뜻, 그 도시를 좀 더 가깝게 다가가려면, 힘들어도 오르막길을 걸어서 시내투어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툭툭이는 힘들이지 않고 그 도시를 돌아보게 되는 편안함은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낀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라사 전망대>
툭툭이를 타고 길을 오르던 중간지점쯤에 있던 그라사 전망대에 내렸다. 태양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는 풍광이 눈에 들어왔고, 전망대에서 보이는 곳은 테주강이라고 한다. 하구가 넓고 수평선처럼 보여서 나는 바다인 줄 알았다. 붉은 지붕과 비탈진 언덕들, 일몰과 야경이 아름답다는 곳이었다. 다시 톡톡이를 타고 세뇨라 두 몬테 전망대로 이동을 했다.
<세뇨라 두 몬테 전망대>
툭툭이를 타고 세뇨라 두 몬테 전망대에 도착하자 그곳엔 관광객인 듯 한 사람들이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도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이때 한눈에 들어오는 리스본은 붉은 지붕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옛날 한 때 부유했다는 이곳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던 곳으로 지금까지 이어왔던 도시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그저 동시대 사람들의 향기를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과거를 이어서 현재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리스본의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 글을 떠 올려본다. "약혼한 연인들이 지나가고, 여자 재봉사들이 지나가고, 놀러 가고 싶은 마음으로 다급해진 청년들이 지나가고, "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전망대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도시를 상상해 본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어느 길목쯤 빵가게, 옷가게, 슈퍼마킷, 맛집이 있을까? 돌아가는 길목에는 학교, 서점이 자리하고, 또 다른 길목에는 큰 도로변으로 버스나 지하철역이 있고, 근처 건물에는 병원, 관공서, 가톨릭 성당 등등... 나는 혼자서 지도를 그려본다. 붉은 지붕이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을 보며 내 생각대로 붉은 지붕아래 숨어 있는 구조물인 방 정원등 공간들, 그 공간을 지나다니며 살아가는 이 도시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냥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그때 같은 일행이었던 분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하고 사진을 몇 장 담아 드렸다. 훗날 그분들의 좋은 추억의 사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일행분들도 아름다운 배경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시내전경을 내려다보며 주변을 살피고 있던 중 이때 일행 중 한 분이 다가와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전망대를 나와 가파른 골목길을 톡톡이가 이끄는 데로 리스본 시가지를 한 바퀴 돌았다. 톡톡이를 타고 내려오는 길목에도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을 보며, 리스본은 과거를 이어 현재까지 포르투갈의 수도로서 중요한 행정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까보다로 카(Cabo da Roca')
버스를 타고 까보다로카로 다시 이동을 했다.
까보다로카는 유럽 대륙의 최 서단 땅끝마을로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이었다. 바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돌탑으로 세운 십자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처음 본 돌탑 십자가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끄떡없어 보였다. 돌탑에는 포르투갈시인 카몽이스의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지상에서 대서양 바다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라는 이곳은 짙푸른 바다가 망망대해로 펼쳐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절벽 끝으로 보이는 물결은 바람에 일렁거렸다. 멀리서 불어오는 세찬 바닷바람으로 쓰고 있던 모자가 벗겨질 정도였다.
수평선 너머 먼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 때 통치자였던 주앙 1세와 엔히크왕자가 떠 올랐다. 그들의 관심과 모험심에서 시작해 대 항해 시대의 바다를 연 사람들이었다. 미지의 바다를 향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그들의 정신이 떠 오른다. 중세 유럽에서 바다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바닷길을 서로 오갔다. 대서양 바다는 유럽인들에게는 거의 미지의 세계였다. 그 너머의 바다는 위험해서 아예 바닷길 자체를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확 트인 바다는 어떤 것도 걸림이 없는 듯,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두려움의 존재처럼 강했다. 그 시대도 어김없이 몰아쳤을, 거친 바람과 조류등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그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바로 그 바람을 이용해 향해를 했다. 그들의 도전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첫 단추가 되었다. 결국 그들의 생각과 모험심은 포르투갈의 대변화를 이끌었다는 생각을 했다.
<벨렝지구>
리스본 서쪽 벨렝지구 테주강 하구에 위치한 벨렝탑으로 이동했다. 탑은 1512년-1519년 마뉴엘 1세에 의해 건축되었고 마뉴엘 양식의 탑으로 항구의 방어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탑은 고전스러웠고 묵직하면서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짙은 회색빛을 띤 탑은 육중한 모습으로 오랜 시간을 그곳을 지키며, 세상의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이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곳을 둘러보며, 대항해가 시작되는 출발점이었던 여러 장소, 그중 벨렝지구는 중요한 항구였다.
다시 장소를 옮겨 제로니무스 (Mosteiro dos Jerónimos) 수도원으로 향했다. 외관은 마누엘 양식이었고 수도원 안뜰정원에서 잠시 휴식을 했다. 내부 관람은 하지 못했다. 이곳엔 소문난 '에그타르트'가 유명했다. 여기 에그타르트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파스테이스 드 벨렝' (Pastéis de Belém)이라는 전문점이 있다고 한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내려오는 레시피 그대로 만들고 있고, 그 비법은 주인 할아버지를 포함해 3명만 알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홀 안으로 들어가서 먹었다. 설탕가루 계핏가루를 뿌려서 맛을 보았다. 달콤한 맛과 바삭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가게에는 에그타르트를 먹기 위해서 온 여행객들인 듯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세계에서 원조이고 가장 맛있다는 곳에서 에그타르트를 맛본 후 다시 오비두스로 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