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
호텔 조식을 마친 후 우리 일행은 마드리드 중심부에 위치한 프라도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유명한 미술관은 대개 방문객이 많아 관람을 하기 전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므로, 우리는 아침부터 서둘러 사람이 덜 붐비는 시간에 관람을 계획했다. 평소 나는 미술관 관람을 즐기는데, 비록 그림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나만의 시선으로 보고 느끼는 것을 즐긴다. 이번 작품도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그림을 마주할 뿐이며, 이곳 미술관 관람은 가이드 해설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예정이다
프라도 미술관 입장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움직인 덕분에 10시 이전에 미술관에 도착했는데, 이른 시간이라 관람객이 많지 않았다. 미술관에는 한글로 된 안내서가 있어 미술관 정보를 미리 살펴볼 수 있었다.
안내서를 통해 이곳에는 많은 전시실과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내용을 접했다. 많은 화가들 중에 눈에 띈 작가로는 고야, 루벤스,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카라바조, 렘브란트 등 익숙한 이름들도 있었다. 이들 작품은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람한 기억이 있었다. 안내서를 간략히 훑어본 후 표를 구매하고 입구 쪽으로 이동해 줄을 섰다. 거의 앞줄에 섰던 우리 일행은 개장 시간에 맞춰 전시실로 들어섰다. 명화책에서만 보던 그림들을 눈앞에서 직접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섰다. 하지만 일정상 몇 작품만 감상하기로 했다. 가이드 해설을 바탕으로 벨라스케스 작품과 고야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관람하기로 했다
<벨라스케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바로크 시대 화가이다. 스페인 국왕 필리프 4세의 궁정화가로서 주로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벨라스케스 <시녀들> 작품이 전시된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펠리페 4세의 어린 딸 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와 시녀들 그리고 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림 속 공주의 모습은 아직 세상을 다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묻어 있었고, 동그란 얼굴과 또렷한 눈, 특히 나를 끝까지 바로 보는듯한 눈빛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때, 가이드가 뒤쪽 거울 속을 잘 살펴보라는 말에,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울 속 두 사람의 얼굴이 비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국왕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나였다.
그림을 여기저기 살피고 있는 중 벨라스케스가 작품 속에 붓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 그를 보는 순간 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착각에 빠져 들었다. 마치 내가 그의 모델이 된 듯했고, 그는 붓으로 나를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와닿았다. 다시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자 궁정 난쟁이와 당시의 의상, 인물들의 표정들, 커다란 강아지 등이 눈에 들어왔다. 공주를 둘러싸고 있는 시녀들의 표정과 동작은 공주를 향하기도 하고 정면을 바라보기도 했다. 여러 인물들 중 정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은 마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1656년에 그려진 이 작품읖 보며, 그림 속 그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은 큰 감동으로 와닿았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서양 명화책을 보았던 기억이 떠 올랐다. 책 제목은 떠오르지 않지만 미국 화가 존 싱어 사전트가 스페인 여행 중 프라도 미술관에서 봤던 벨라스케스 그림을 보고 영감을 많이 받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책 속에는 사전트가 습작으로 그린 어린 공주의 자세, 표정. 옷의 묘사 등을 자세히 관찰한 것을 실린 내용으로 기억된다. 가만히 떠 올려 보면 사전트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소녀와 의상들이 살짝 닮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 사전트의 그림을 좋아해 작품 전시가 열리는 곳을 찾아다니곤 했다. 사전트가 <시녀들> 그림을 보고 영감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예술이 주는 영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가 영감을 받았다는 그림 앞에서 한동안 멈춰서 바라보며, 벨라스케스 그림이 현대 작가인 사전트에게 얼마나 중요한 원천이 되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자리를 옮겨 고야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프란시스코 고야>
다음은 고야(1746-1828)의 작품이다.
전시장 돌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리스> <카롤 4세 가족의 초상> <옷 벗은 마하> <옷 입은 마하>등을 가이드해설을 들으며 관람을 이어갔다.
작품은 <1808년 5월 3일> 나폴레옹이 스페인 침공 시 프랑스 군대의 잔혹성을 보고 그들의 만행을 고발한 작품이었다.
고야에 대한 책을 우연히 읽은 적이 있다. 자닌 바티클이 쓴 <고야 황금과 피의 화가>라는 책에서 폴 모랑의 <세비아의 고행자들>,1953년을 인용한 글을 다시 재인용을 해 본다.
"5월 3일 마드리드는 프랑스군의 점령하에 들어갔다. 체신국자리에 프랑스군 재판소가 들어섰다. 셔츠깃 이 풀리고 양손을 뒤로 묶인 말없는 애국자들을 실은 무개마차들이 온종일 거리를 지나갔다. 그들은 각지에서 무더기로 사살되어 시체가 산더미를 이루었다. (.........) 5월 2일 아침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우리의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 이후로 에스파니아의 모든 사람은 프랑스를 적으로 보았다."
이 책은 프랑스의 스페인 침공 참상을 알리듯, 고야의 그림 속에는 그로 인해 벌어진 참혹한 장면들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폴레옹 군대는 스페인 일반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총구 앞에 선 사람은 물론이고 그 주변인들까지 느꼈을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그 잔혹한 광경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긴 총구로 겨누는 모습은 사람이 사람에게 겨누는 총구를 든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어땠을까, 총구를 든 군인들의 얼굴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 작품을 보며, 총구를 든 이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아무런 감정 없이 그저 기계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는 뒤쪽 사람, 바닥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 사람의 모습은 그날의 참상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가이드 해설을 들으며 화폭을 살피던 중 어둠 속에서 밝은 빛으로 비치는 부분에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흰옷을 입고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용감하게 맞서는 듯한 모습.... 밝음과 어둠의대비.
고야의 그림을 통해 전쟁의 참혹성이 강하게 와닿았다. 지구상에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 전쟁이 멈추지 않고 있다.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으며,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작품을 보며 나는 역사의 단면이 스쳐 지나갔다. 대체로 국경을 마주한 나라가 한때는 평화와 공존을 외치다가 어느 순간 침공자로 변해버리는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고야의 그림을 통해 나는 마치 19세기 스페인의 비극적 역사를 눈앞에서 보는 듯한 깊은 울림이 와닿았다.
또 하나의 섬뜩한 그림을 본다.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리스> 작품은 그의 말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이 그림은 전시용이 아니었고 자신의 집 벽에 직접 그려져 있었던 그림이라고 한다. 순간 집 벽이라니....
지금 보고 있는 이 그림은 그림 속 배경과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음산하며 괴기스러움으로 다가왔다. 당시 70대였다는 고야는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그렸다는 작품으로 그림은 그의 심리적 상태를 나타낸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리스> 작품을 보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크로노스'를 떠올리게 했다.
또 다른 작품으로 걸음을 옮겼다. 큰 화폭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옷 벗은 마하> <옷 입은 마하> '마하',라는 뜻은, 옷을 잘 차려입고 생김새는 신경을 썼지만 귀족은 아닌 '마드리드 여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이드 해설로는 <옷을 벗은 마하> 그림 앞에서, 그 시대까지만 해도 누드화는 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그중에서도 '아프로디테'가 대표적이었다고 한다. 설명을 듣는 동안 예전에 명화책에서 본 아프로디테의 누드화를 떠 올렸고, 또 다른 누드화로 <파리스의 심판> 장면 속 '헤라' '아테나''아프로디테' 세 여신의 뒷모습도 떠 올랐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들은 노출의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그림 속 그들은 인간이라기보다 신적인 존재처럼 느껴졌고, 여신들의 누드화는 신이 지닌 고결함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마주한 고야의 누드화는 여신이 아닌 실제 인간 여인을 그린 작품이었다. 그 점에서 이 그림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었을 것이다. 화면 속 벗은 여인의 강한 눈빛과 환한 얼굴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림 앞에서 여인의 시선을 본 당시 사람들도 많이 당황스러워했다고 한다.
다음은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 었다.
초상화는 왕실가족 그림으로 흔히 명화에서 보았던 왕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와닿았다. 그림 속에 나타나 있는 그들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모습과 공허한 눈빛이 와닿았다. 흔히 여태 봐 왔던 명화 속 왕실은 화려하게 치장하고 위엄 있는 표정들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가 그림으로 나타나 있었다. 왕비(마리아 루이사)가 중앙에 위치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당시 그녀의 위치를 말하는 듯했으며, 그에 비해 칼를로스 4세는 중앙이 아니라 가족들이 서있는 한편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당시 왕으로서의 위치가 느껴졌다.
그림 좌측 뒤편에 어두운 부분에 고야가 그림자처럼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앞 서 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에서 화가인 자신을 그려 넣었던 것을 봤다. 고야 또한 가족초상 속 자신을 그려 넣은 그림을 보며 당시 왕실가족구성원 속에 자신을 넣었다는 것은 당시 왕실을 향한 그의 생각을 나타낸것이 아니가 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이 밖에도 고야의 명작을 관람했다. 고야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걸쳐 살다 간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였다. 그 당시 스페인 사회상을 그림으로 남기고 간 역사 대변인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 실제 명화를 본 것은 정말 기뻤다. 미술관에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여행 일정시간의 제한으로 몇 작품정도 감상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긴 여운을 가슴에 담고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고야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프라도 미술관 입구 거리의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미술관을 나와 점심식사를 한 후 마요르 광장과 솔 광장으로 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