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의 롤 모델
어린시절 롤 모델이었던 사촌 언니가 있다.
친정고모 딸 사촌언니다. 어릴 때부터 자주 보던 사촌언니였다. 언니는 현재 사회생활을 끝내고 퇴직을 한지도 몇 년이나 지났다. 언니는 퇴직을 했지만 종교활동, 여가활동으로 쾌 바쁜 모양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시촌언니와 점심 약속을 했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바쁜 언니와 좀처럼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이번에는 어렵사리 서로의 일정을 조율해 약속을 정할 수가 있었다.
사촌언니를 생각해 보면
당시 시골이었던 우리집을 방학 때마다 왔던 모습이 떠 오른다. 대도시에서 사는 언니는 겨울이면 모직코트에 단정한 원피를 입고, 까만 단화를 신고 왔다. 여름방학땐 하얀 원피스에 빨간구두를 신었다. 방학이면 우리집에 왔던 언니는 그때마다 조심스럽게 미소를 짓던 단발머리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그때 사촌언니는 나와 다른 별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동화책에서 볼 수 있는 호화로운 유리성에서 살고 있는 것 처럼 부럽기도하고 낯설었다. 사촌언니의 단정한 모습과 다르게 나는 빨간 스웨트에 까만 골덴바지를 입고 꺼멍 배신을 신고 있었다. 배신은 운동화와 다르다 천으로된 얇고 가벼운 신이다, 비가 오면 온통 신발안으로 물이 들어와 마치 물속에서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때로는 신발 앞쪽으로 동그란 구멍이 나 있을 때도 있었다. 배신은 굳이 요즘 신발을 비유하자면 스니커즈형이라하면 그나마 비슷하다고 볼수 있다.
평온하던 평소 감정은 사촌언니가 오는 날은 평온하지가 않았다. 알수 없는 패배감이랄까 그언니 앞에서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날 언니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말도 잘 하지 못했다.
언니는 항상 조용한 성격이었다 크게 웃는 법도 뛰어노는 일도 없었다. 언제나 침착하고 말 수가 적었다.
사촌언니는 여섯 살 무렵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당시 언니 아래로는 세 살배기 남동생과, 막 태어난 동생이 있었다. 갓난 동생이 태어나는 기쁨보다 더 큰 걱정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마침 큰집 큰 어머니가 출산을 해서 한동안 그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 후 언니의 아버지, 나에겐 고모부가 재혼을 하셨다.
언니의 새어머니는 말수도 적고 감정표현이 적은 분이셨다. 웃는 일도 화내는 일도 많지 않으셨고 딱히 학대를 하신 건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조용했다. 언니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조용한 집안분위기 속에서 언니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시절에는 고등학교를 시험을 치러서 원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시대였다. 언니는 대도시 안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여고에 들어갔다. 그후 대학도 명문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입학을 했다..
대학에 들어간 언니는 당시 어쩌다 만나게 되면 고등학생 때의 언니가 아니었다.
그동안 여고 단발머리였던 모습이 대학입학을 할 무렵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머리는 점점 길어졌다. 어느 날부터는 긴 생머리로 변해 있었다.
무릎쯤 오는 길이 주름치마에 흰 블라우스 베이지색 더블단추 버버리 코트를 입은 언니는 단정하고 멋지게 보였다. 대학생 시절 언니는 늘 두꺼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언니는 대학 서컬활동으로 나이가 몇 살 위인 선배를 만났고, 졸업 후 그 선배와 약혼식을 했다. 그 뒤로 일 년 후쯤 결혼을 했다. 지금도 언니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결혼 후 삼년 쯤 지나 딸을 출산했다. 그 딸이 자라서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언니는 결혼 후에도 전공을 살려 직장생활을 했고 오랫동안 일을 하다가 몇년전 퇴직을 했다.
언니의 성장과 집안 분위기와는 다르게 우리집은 시골이었고 우리는 형제가 많았다.
어릴 때 나는 동생들과 자주 다투기도 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부모님께 투정도 부렸다. 항상 시끌시끌한 분위기 속에 자랐다.
어릴 때 한 번씩 보는 언니를 나는 부러워했다. 언니가 우리집에 올땐 나는
언니가 초등학교 때 입고 있었던 원피스와 모직코트 검은 단화가 부러웠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명문이라는 학교를 다녀서 부러웠다. 내가 부러워했던 명문 여고는 내가 여고를 다닐 때는 이미 모든 학제가 달라져있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언니는 나에게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에게는 나를 성장시키는 롤모델 같은 존재였다.
오랜만에 언니와 점심 식사를 하던 중 옛날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다.
"언니, 나 어릴 때 언니 되게 부러워했어~"
언니는 웃으며 "뭘~?" 하고 말했다.
"언니가 겨울방학에 우리 집에 왔을 때 입고 온 모직코트랑 원피스, 까만 단화까지... 그게 아직도 기억나. 그리고 대학 갔을 땐 버버리 코트도 멋있었고... 등"이라고 했다.
언니는"그랬니~?" 하며 웃는다.
그러다 식사를 하던 언니는 "사실은... 나, 사춘기 때 많이 외로웠어."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말수가 적으시잖아.
학교 갔다 오면 집안이 너무 조용해서 공부 말고는 할 게 없었어."
언니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그때 여고 때 친한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대번에 '너 친엄마 아니지.?'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렇다고 한 적이 있었어."
그때 사촌언니 친구는 지금 유명대학의 교수가 되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가끔 연구실에서 그때 그 분위기가 떠 오른다는 이야기를 언니에게 말을 한다고 한다. 그 친구는 사촌언니를 만나면 "사실 이 자리는 네가 와야 할 자리인데...'라고 말하곤 한다고 했다.
잠깐 말이 끊겼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언니의 조용함 뒤에 그런 큰 외로움이 깊이 숨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당시 외롭고 조용하게 가라앉은 가정환경을 책으로 잘 이겨냈지만 사촌동생들도 잘 자랐다. 언니 바로 아래 사촌동생은 캐나다 이민을 가서 성공을 헸고 태어 날 무렵 갓난아기였던 동생은 지금 의사로 일하고 있다.
"언니, 요즘엔 하루를 어떻게 보내?"
식사가 끝날 즈음 화제를 돌려 물었다.
언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요즘 친구들이랑 발레 배우러 다녀."
나는 눈이 동그래져 되물었다.
"진짜로?" "응."
발레.....
언니한테는 발레는 진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언니는 지금도 아름다워 보였다.
되돌아보면 언니는 내게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때는 나와는 다른 공기를 마시고, 다른 세상에 사는 느낌을 받았던 사촌언니 또 다른 내면을 보게 되었다.
나의 롤 모델이었던 언니는 아무도 모르게 깊은 외로움을 책으로 달래며 잘 이겨 나온 언니가 그날따라 나는 언니가 더 좋았다. 외로웠던 나의 롤 모델 사촌언니. 지금도 응원을 하며 과거 나의 롤 모델이 되어 주었던 언니. 앞으로도 나의 롤 모델이 되어주기를 바래요...
사촌언니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