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 줘서 꽃이 되었다.

by 글열음






“언니야, 나 이름 바꿀까?”

몇 년 전, 친구 따라 우연히 작명소에 들렀다는 아래 동생이 전화로 물어왔다.

이름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그 후 동생은 정말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번엔 며칠 전, 셋째 동생이 또 같은 말을 꺼냈다.


“언니, 나도 이름 바꿀까?”


요즘은 부드럽고 세련된 이름을 선호한다.

부르기 쉬운 이름, 귀에 감기는 이름이 많다.

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이 붙는 순간부터, 그것은 마치 마법처럼 그 사람을 나타내는

‘자기화’가 된다. 이름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 존재를 인식하는

도구로 쓰인다.


세상 만물은 대부분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형태는 이름을 얻는다.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모습에서 하나의 사물이 되고 우리는 그 이름과 사물을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름은 단지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이다. 같은 풍경도 이름이 붙여질 때 비로소 우리의 경험 속에 자리 잡는다. 결국 우리가 보는 세계는 형태 그 자체라기보다 이름과 함께 살아가는 세계다. 하물며 사람이 가지는 이름은 확실하게 고유한 자신만의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이름이 얼마나소중한

더욱 느낀다.


나는 이름 덕을 톡톡히 보며 살아왔다.


내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신 것이다.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생님의 눈에 쉽게 띄는 이름이었다

여름 방학이 언 뜻 떠 올랐다.

그해 여름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이 농촌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우리 마을에 내려왔었다.

봉사활동으로 마을 아이들 공부를 지도하기 위한 여름 공부방이 만들어졌다. 첫 날이었

다. 마을에 모인 초등 전 학년과 서울에서 내려왔던 대학생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청바지에 긴 머리였던 언니가,

"000 누구니?"라고 했다

그때, 나를 알아보고는 웃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이름은 나를 더 앞으로 이끌었다.

그때는 나는 사춘기가 막 접어드는 시기였

다. 입학식 날, 담임 선생님이 첫 출석을 부르다가 내 이름에서 멈추셨다.

“000 누구니?” “네!”

하고 손을 들었더니,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으셨다.

순간, 이름은 나를 눈에 띄게 해 주었다. 반 친구들보다 이름이 돋보인 탓 인지 나는

이름 덕을 봤다. 그날 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투표로 반의 00 부장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활달한 성격이 아니었다. 내성적이고 잔잔한 성격이었고,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름 탓인지 자연히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익숙해졌다.


그 이후로도 나는 이름 덕을 보며 살았다.

지나고 보니 학교를 다닐 때도 사회생활을 할 때도 나는 나 보다 이름이 더 빛났다.

이름이 나를 돋보이게 만들었고, 사람들 기억 속에 조금 더 또렷이 남게 해 주었다.


몇 년 전,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한 중년 여성이 자꾸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별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목적지에 내려 보니 그 여성도 따라 내렸다.

무심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녀가 내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저… 000 아니니?”


낮고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순간 ‘엉? 누구지?’ 하는 생각에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자신이 00 여고 출신이라며,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말하는 내용이 분명 나의 출신고등학교와 그 시절과 맞아떨어졌다.

그 친구는 학창 시절 친했던 사이는 아니었다. 졸업과 동시에 서로 다른 대학 진학으로 자연스레 멀어진 사이였다.


“너 그대로라서 딱 보니 알겠더라. 이름도 바로 떠올랐어.”


그녀는 얼굴보다도 이름을 먼저 떠올렸다고 했다.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세월이 흐른 뒤엔 얼굴도 흐릿해지고, 이름도 가물해지는 법인데—

그녀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름이 얼마나 깊게 사람의 기억에 각인되는지를 새삼 느꼈다.


이름은 시대를 닮는다.

과거 역사적으로 내려왔던 이름이 궁금해졌다 당시에는 보통의 남성들 이름은 족보나 역사책으로도 알 수 있다. 역사책에 잘 등장하지 않는 여성들 이름이 궁금해졌다. 네이버 지식 오픈백과를 통해 알아보았다.


"역사상 유명 여성으로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등의 이름이 전해지지만 그것은 실명이라기보다 호나 기명이다. 드라마나 소설에 보면 사월이. 오월이. 유월이 등도 등장하지만 이 이름은 하녀나 상민들의 이름이다. 또 그시대에 실제로 그런 이름이 쓰였는지에 대한 기록도 명확하지 않다"

<네이버 지식 오픈백과>


조선시대 실제로 지어졌던 여성 이름은 어떤 이름인지 또 궁금했다. 이어서 네이버 오픈 백과를 보았다. 자료 출처를 조선왕조실록의 해당 기록을 참조하여 정리했다고적혀 있었

다.

기록에는 계유정난 (1453년) 으로 노비로 끌려간 여성들 이름을 알 수가 있었다.


"가구지:이유기의 딸. 가지:이개의 아내. 내은비:김승규의 아내 마배: 최득지의 아내

맹비. 미치. 소비. 소사. 의정. 효생. 막금. 미치. 목금. 봉비. 산비. 의정. 사금. 등"

<네이버 오픈 백과>


그 당시는 남성위주의 신분사회로 남성의 이름은 현대와 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이름은 지금과 많이 다른 것을 알 있었다


어릴 때 난 할머니 이름보다 택호가 더 익숙하다. 내가 마을 어른들께 인사를 하면

그분들은 "아이고 이게 누고" "00 띠기 손녀 아이가~" 난 할머니께서도 이름이 있다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 할머니 세대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불려졌던 이름은 사라지고 택호 붙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뒤에 알고 보니 택호라는 것은 할머니께서 어릴 때 자랐던 친정동네 지명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그 택호가 자연스럽게 할머니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택호는 00댁을 말한다. 경상도에서는 댁을 띠기로 불렀다.


지금은 다르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으로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집에서는 엄마 아내이지만, 직장에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자기를 나타낸다.

어쩌면 하루 중 엄마 아내보다 자신의 이름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삶의 형태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몇 십 년 전과는 다른 새로운 인간들이 진화한

삶은 달라졌다. 이름 역시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세상을 닮 듯 편하고 부르기

쉬운 방향으로 따라가는 느낌이다.


이처럼 이름이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태어난 해에 , 비슷한 이름이 유독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발음이 비슷해 헷갈리는 이름들도 늘어났다.


이제는 이름은 많이 부드러워졌고, 이름에도 ‘이미지’와 ‘감성’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동생들의 이름 바꾸겠다는 말이 낯설지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동생의 말을 듣고 주변을 살펴보니 가까운 지인들도 더러 이름을 개명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날 지인이 자신의 이름을 개명한 것을 알리는 연락이 왔었다. 처음에는 그 이름이

낯설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며 바뀐 이름은 오히려 지인의 모습을 더욱 와닿게 그려냈

다. 결국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이다. 우리가 친구의 이름을 떠올릴 때, 그 이름 너머로 얼굴과 목소리, 성격까지도 함께 떠오르지 않는가. 오래전 친구를 떠 올리면 이름과 모습을 동시에 생각이 난다. 지나왔던 학교친구

이든 직장동료들이든 모습과 그 이름은 하나가 되어 그들과 같이 나의 뇌에 저장되어

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전체를 대표하는, 가장 짙은 상징이다.


지나고 보니,

이름은 나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의 원력이자,

나를 키워준 보이지 않는 날개였다.

이름을 잘 지어주신 아버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립고 감사하다.

이름으로 인생의 꽃이 된 나,


김춘수의 <꽃>이 떠올랐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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